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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혹은 기록

아버지, 가을입니다

by 愛야 2022. 10. 12.

아버지.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쌀쌀합니다.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여름으로부터 우리 모두 흘렀습니다.

엄마는 잘 지내십니다.

아버지는 당신 아니면 큰일날 듯 엄마를 유리잔처럼 보살폈지만, 정작 엄마는 새 환경에 적응을 잘 하십니다.

저희 자식들 중 어느 한 명도 엄마를 계속 집에서 모시지 못 해 마음 아프고 송구할 뿐이지요.

지난 30년 동안 가장 적임자였던 저도 이제는 건강이 여의치 않음을 용서해 주세요.

 

그저께 10월 10일은 49재 날이라 길상사에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자주 다니시던 등산로 초입의 그 길상사 맞습니다.

49재를 올리는 대웅전 앞뜰은 오후 햇살 반짝이는 가을이었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시라는 독경이 카랑카랑한데, 그렇지요, 아버지 안 계시건만 세상은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세상은 달라졌겠지요.

아버지의 그 새로운 세상으로 가볍고 편히 떠나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저는 아버지 장례를 치르는 동안 딱 한 번 울었습니다.

입관식 때 아버지의 차가운 얼굴을 쓰다듬으며 수고하셨다고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눈물이 흘렀습니다.

다 보셨지요?

그때도 지금도 아버지를 위하여 슬프진 않습니다.

은퇴 후 엄마 간병으로 너무나 오래 고생하셨기에, 떠나심이 안타깝지도 않았습니다.

아마 엄마가 돌아가시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다만, 영원히 내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다는 서글픔과 쓸쓸함이 가득할 뿐입니다.

끈을 놓아버리고 우주에 혼자 남은 고적감이지요.

결국 제 예감처럼, 지난봄 그 만남이 아버지와 명료한 대화를 하였던 마지막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엄마께는 아버지 먼 길 떠나셨음을 아직 말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뒤 오빠와 함께 면회를 갈 텐데, 그때 엄마의 상황을 보아 알리겠습니다.

어쩌면 엄마는 덤덤하게, 응 그래 편히 하셨네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마시고, 처음의 그곳에서 처음처럼 쉬십시오.

엄마를 기다리지도 마세요.

 

아참, 49재 새벽에 욱이 꿈에 가셨더랬지요?

욱이가 꿈에 할아버지와 오픈카를 탔는데, 지붕을 열어드리자 할아버지께서 굉장히 좋아하더라고 했습니다.

생전에 오픈카에 대한 로망이 있으셨어요?

꿈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다 편안하게 웃었습니다.

네, 이렇게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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