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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신경숙

by 愛야 2005. 8. 28.

신경숙의 <부석사>를 천천히 아껴가며 읽었다.

속독을 배운 아들은 타박을 이만저만 하는게 아니다.

난 최근, 책은 빨리 읽을수록 빨리 잊혀진다는 나름대로의 개똥논리로, 천천히 읽으려 노력한다.

 

그녀의 글솜씨는 늘 부럽다.

중언부언한 나머지 갈수록 뜻이 모호해져 버리는 나의 능력이 참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그녀의 딱 떨어지는 심리묘사와 섬세한 표현, 메시지로 몰아가는 치밀한 구성도 좋다.

쓸데없이 어려운 말로 초현실적인 냄새를 풍기지도 않는다.


나는 쉬운 글이 좋다.


쉽다는 것은 수준이 낮다라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마음에 다가가는 길이 쉽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든 소설이든 혹은 비평이든 글쓴이와 읽는이의 마음이 찬.반을 떠나 같은 공간 속에서 만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어떤 시나 소설을 보면 지나치게 현학적인 나머지 뜬구름 같은 내용이라, 도대체 작가가 어디쯤에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내가 너무 구식인지 무식인지 모르지만...

 

이문열을 한동안 밀쳐 놓았던 것도 그런 이유이다.

그의 박학다식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것이 너무 표면적으로 드러나 소설이 무슨 지성의 전시회나 토론의 장처럼 느껴지던 시기가 있었다.

그의 초기소설에서 느껴지던 삶의 해학이나,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감동도 여운도 없었다.

그러자 감성적인 끌림이 사라져 버렸다.

소설가에게 수업 듣는 학생 노릇은 썩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최인호가 훨씬 글쟁이스럽다.

최인호 또한 그와 비슷한 순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는 과감히 글쓰기를 한동안 포기한 걸로 안다.

오랜 방랑 후 다시 최인호의 소설이 돌아 왔을 때 그의 글은 참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의 글이 반짝이는 것이었다면, 요즘은 긴 호흡의 묵직한 나무와 같이 느껴졌다.

물론 작가도 긴 인생을 살아가는 중이므로 수없는 작품세계의 변화를 겪는 것이 당연하다.

 

신경숙은 처음부터 마음을 채워주는 작가였다.

양귀자보다는 덜 질펀하고 김채원보다는 덜 귀족적이다.

그녀의 적절히 소박한 시선이 늘 감탄스럽다.

옛날 오정희의 글에서 느끼는 절제를 본다.

 

한가지 아쉬움은, 아무데나 던져 두어도 아, 이건 신경숙 것이지, 하는 오직 그녀만의 것이 조금 부족하다고나 할까...

박완서 특유, 박경리의 치밀한 묘사, 한눈에 알아보는 김지원.김채원의 감각, 이런 것 말이다.

그녀의 문체는 은희경에서도, 공지영에게서도 약간씩 느껴지니 이것은 내 수준 낮은 오해일까?

 

그녀의 <부석사>를 읽다가 멍하니 창 밖을 본다.

길 떠나기, 길 돌아오기.

떠나면 오는 길을 영영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인지.

나는 그녀의 주인공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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