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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수덕사 가는 길<1>

by 愛야 2005. 9. 3.

 

휴가철과 방학이 끝나고 나니 곳곳에 여행이야기가 즐비하다.

연수교육이나 개인적 볼일을 위한 이동을 제외하고 오롯이 여행을 위한 여행을 한 것이 언젠지 기억도 흐릿하다.

이렇게 살면 뭐하나 싶지만 막상 자투리 시간이라도 생기면 그저 방바닥과 합체할 뿐이었다.

 

얼마 전 친정언니가, "올 가을 은행잎 노래지면 덕수궁 꼭 가자." 했다.

몇 년째 반복되고 있는 공수표 약속이다.

은행잎을 보러 덕수궁까지 갈 마음도 시간도 없지만 나는 응 그러자 했다.

어차피 말로만 할 여행인데 인심 못 쓸 것도 없었다.

 

가 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수덕사다.

나는 마음에 든 곳이 있으면 같은 여행지를 자주 간다.

혹자는, 거긴 한번 가 보았으니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좋지 않나 하는데 내가 워낙 돈 안 되는 인간이다보니 갔던 곳을 또 가곤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수덕사다.

     

1. 첫 번째 방문

대학 4학년 여름방학을 끝내고 2학기 수강신청을 하였다.

대학의 마지막 학기여서 마음이 허전했던 것 같다.

대학 4년을 참으로 헛되이 보냈다.

맘에 들지 않는 대학 탓하고 서울로 유학시켜 주지 않는 아버지의 독단성을 탓하고 집안 경제력을 탓했다.

두 학년 터울 오빠는 서울로 갔으니 딸아들 차별이라고 서운해 했다. 

우울하게 보낸 대학 시절이었으나, 막상 아무런 발전 없이 끝나려 하니 뒤늦게 후회가 찾아 왔다.

 

개강까지 일 주일의 공백이 있었는데, 난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것도 혼.자.서.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상당한 客氣도 있지 않았나 싶다.

교통이 쉽게 연계되는 곳을 찾다가 수덕사 가는 길을 보게 되었다.

안내책자가 일러주는 대로 머릿속으로 미리 노선을 그려 보니 자신이 생겼다.

왜 안 떨렸겠는가, 머리털 나고 처음 혼자 하는 여행인데.

물론 부모님껜 친구들과 같이 서울 간다고 불효를 저질렀다.

하늘이 두 쪽 나도 혼자 여행을 보내줄 분들이 아니므로.

 

머리 속으로 수없이 연습한 덕분에 일사천리로 수덕사를 찾아갔다.

열차로 천안역ㅡ역사 왼편의 시외버스터미널로 간다ㅡ 예천까지 가서 수덕사행으로 갈아 타든지, 띄엄띄엄 있는 수덕사행을 처음부터 타고 한방에 가든지ㅡ나는 후자를 택했다.

수덕사에 도착하니 벌써 어둑어둑 산골의 저녁이 찾아 오고 있었다.

하루종일 차를 타고 와서 山寺의 밤을 맞았다.

 

이튿날 아침, 덕숭산 아래 그 유명한 절은 너무나 고즈녁했다.

현대적 보수공사도 많이 안 한 듯, 단청도 바래고 나무결도 낡아 보였다.

그래서 더욱 좋았다.

일주문을 지나 본사로 올라가다 보니 양쪽으로 길이 각각 곁가지처럼 나 있다.

왼쪽은 여승방, 오른쪽은 남승방으로 가는 길이다.

왼쪽으로 가 보았다.

여승방은 전국 제1 여승교육원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세상을 등지고 오는 여인네를 떠 올리자 울적했다.

한 때 일엽스님도 여기서 정진하셨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 절마당으로 들어섰다.

푸르고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낡은 목조 대웅전이 웅장하였다.

석사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라나.

종각 아래 커다란 범종, 鼓 , 雲板 , 木魚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4가지를 치고 두드리며 온 세상 중생들을 깨우친단다.

탑이 있었는지 기억에 없다.

다른 유명 사찰에 비하면 허허로울 만큼 구조물도 건물도 많지 않았다.

텅 빈 한낮의 절마당에 쏟아지던 하얗던 햇살.

 

대웅전 뒤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덕숭산으로 올랐다.

덕숭산 정상 가까이 위치한 정혜사로 가는 도중, 만공스님의 碑가 있었다.

유명한 스님들이 많았던 절인갑다.

말사 정혜사에 이르러 절마당가에 앉아 땀을 식혔다.

 

수덕사 일주문 바로 아래 왼편으로(절을 향하여) 커다란 초가지붕을 가진 <수덕여관>이 있다.

현판의 글씨도 예사롭지 않고 , 큰 빗장이 달린 나무대문도 옛스러웠다.

너무나 인상적인 초가집이지만 여관인지라 혼자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보고만 왔다.

나는 민박을 했으므로 혼자라도 별 걱정없이 3일이나 지냈다.

아니다 4일이었나.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이상하게도 갈 때의 기억은 생생한데 돌아오는 여정은 깜깜하다.

 

그렇게 수덕사를 처음 간 이후 난 3차례나 더 수덕사를 찾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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