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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남자의 머리카락

by 愛야 2005. 10. 27.

 

 

리 동네는 대학街이다.

대로변은 물론이고 골목골목 그들의 문화로 넘쳐난다.

옷집, 밥집, 술집, 다시 옷집, 밥집, 술집, 복사집, pc방, 미용실, 그리고 단 두 곳의 서점.

서점은 그나마 최근에 한 곳 더 생겨 두 곳이 된 것이다.

 

학생들이 길에 가득하다.

다들 어여쁘다.

특히 남학생들이 어여뻐졌다.

배우들의 차림새와 헤어스타일은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 아닌 시대이다. 

멋드러진 배용준과 이병헌이 물밀듯이 거리를 메우곤 한다.

난해하게 헝클어진 머리도 스타가 하면 멋져 보이고 머잖아 동네 버스정류소 앞에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젊은이들의 머리 손질 솜씨는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감탄스러워서, 희안한 모양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요즘엔 정답이 없다.

컨셉입니다, 하면 다 그만이다.

 

한 때 남자들의 머리카락 길이를 규범으로 저울질 하던 시절이 있었다.

기발한 발상이었다.

법의 허용치를 넘어서면 경찰의 가위가 미풍양속 속으로 친절히 밀어 넣어 주었다.

짧고 단정한 머리의 남자들은 얼마나 정갈하고 양반스러운가. 

하기는 남자들을 길들이는 데는 늘 가위가 동원되는 모양이었다. 

골목길 전봇대 담벼락에서 보던 익숙한 가위를 그들은 파출소에서도 만나곤 하였다.

남녀가 평등하자면, 여자들의 머리길이도 법의 제약을 받아야 했는데 여자에겐 불공평하게 치마길이로 불이 옮겨 붙었지 않았던가.

바지길이 단속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늘, 버스에 한 남학생이 훌쩍 뛰어 올랐다.

허걱, 그는 정말 심했다.

머리카락에 헤어젤을 잔뜩 발라서 한 주먹씩 쥐어 위로 곤두세웠다.

아이들이 그리던 햇님 같다.(상상하시라)

얼굴을 중심으로 삥 둘러 위로 뿔처럼 솟은 저 머리를 하고 집을 나설 때 부모님은 어땠을까.

나는 저 젊은이 부모의 눈이 되어 쳐다 본다.

 

문득 기억 저 편, 흘러간 한 남자가 떠오른다.

그림 그리는 친구의 선배였다.

그 친구의 소개로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의 헝클어진 곱슬머리에 웃었다.

반곱슬머리는 조금만 방심해도 온통 어수선해진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자를 소개받는 자리가 아닌가.

하지만 곧 용서했다.

영혼이 자유로운 화가이니까 머리카락도 자유로울 것이었다.  

"하도 머리를 안 깎았더니 어느날 엄마가 자는 내 머리에다가 을 잔뜩 붙였데요. 그래도 몇일 버티다 깎았어요."

그가 대수롭잖게 말했다.

곱슬머리 화가가 성급히 프로포즈를 하는 바람에 놀라 연애를 그만 두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꽤 매력적인 사람이었음에 틀림없었는데...저 햇살머리 젊은이도 껌이 붙은 것을 감추고 있는 걸까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머리카락은 우리에게 아무런 해꼬지를 안한다.

길든 짧든, 노랗든 파랗든.

자르면 또 자라 나올 머리카락일 뿐이다.

하지만 머리카락에는 패션을 넘어서는 영혼이 있다.

불가에서 계를 받으며 머리카락을 버린다

번뇌의 시작이 머리카락이라면, 혹사하기에 앞서 그것을 잘 다스려 볼 일이다. 

저토록 머리카락에 온 마음을 빼앗기며 사는 여기가 바로 속세의 한복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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