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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너무 환한 세상

by 愛야 2006. 4. 28.

 

 

 

 

내 시력은 썩 나쁘진 않다.

근시 약간, 난시는 조금 심하다.

밤 네온사인이나 비 오는 날 아니면 못 견딜만큼 나쁜 눈은 아니다.

 

그래서 안경을 잘 안 쓴 지 제법 되었다.

벗고 다녀보니 참 편했다.

환적인 세상이었다.

미터 앞의 사람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또렷이 보고 싶으면 다가가면 되고 먼 곳은 포기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TV나 영화를 볼 때는 안 쓸 수 없다.

배우 얼굴이야 궁금하지도 않지만 두 겹 세 겹 보이는 글자를 읽을 수 없다.

홈쇼핑 볼 때도 꼭 안경이 필요하다.

 

문득, 시력 검사한 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경을 바꾸지 않고 계속 몇 년 동안 썼기에 어제 새로 돗수를 조절했다.

 

오늘 아침.

비 온 뒤라서 그런가, 새 안경을 끼고 보는 세상, 언제부터 이리 맑았나!

언제부터 나무는 저리 연둣빛이었나!

저 가게의 아가씨는 결코 피부가 뽀샤시 한 게 아니었구나.

<락천>이었던 막걸리집은 왜 갑자기 <탁천>으로 바꾼거야?

 

나 모르고 있었다.

진실은 항상 제자리에서 어제도 오늘도 진실했다는 것.

또렷, 선연, 활기, 명명백백.

 

거울을 보았다.

.....흐음, 돗수조절 하지 말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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