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 위에 남아 있던 감자 네 알을 커피 한 잔과 함께 순식간에 다 먹었다. 그러고도 무언가가 덜 찬 것 같다. 어제 아침도 그랬다. 상 위에 놓인 유뷰초밥과 구수하게 끓인 누룽지에 눈이 자꾸 갔다. 아들이 아침에 먹고 남긴 것들이었다. 슬금슬금 손이 가서 결국 다아 먹어 치우고 덤으로 초코파이도 하나 먹었었다.
초코파이라니! 단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일 년 내내 가야 사탕이나 초코렛이 필요 없는 사람인데 요즘은 커피를 마실 때 초코파이류를 한 개씩 곁들여 먹는다. 어떤 때는 두세 개를 먹기도 한다. 얼마 전, 두 상자 묶어서 싸게 팔길래 아들 간식 하려고 샀는데 내가 다 먹어치울 줄 몰랐다.
아침부터 위장을 음식으로 채우는 일은 이 가을 들어 생긴 이상한 현상이다. 아침에 아침밥 먹는 게 당연하지 감자 몇 알, 유부초밥 몇 개와 누룽지 한 그릇으로 뭔 엄살이냐고 속으로 생각하시겠지만 나에겐 이상현상이다. 아침밥 안 먹은 지 어언 수십 년이니까 말이다.
언제나 낮 12쯤 되어야 슬슬 공복감이 오면서 식욕에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오전엔 그저 커피 한 잔으로 충분했을 뿐만 아니라 혹 뭔가를 먹고 나면 도무지 속이 갑갑하고 부대껴서 컨디션이 더 안 좋아지곤 했다. 배가 등에 착 들러붙는 공복감을 좋아하는 나는 배가 부르면 막 신경질이 나기도 했다.
나는 나대로의 체질이 있으니 내 체질에 맞게 주욱 살면 되는 거야 이러면서 여태 살았다. 부모님도 결국 나에게 아침을 먹이지 못한 채로 시집을 보내셨으니 더 말 해 무엇하랴. 그랬는데 요즘은 아침부터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른 아침부터. 참 살다 보니 별 웃기는 일도 다 있다.
어제 오후에 의식적으로 좀 많이 걸었다. 저녁 퇴근 때는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빙 돌아오게 되었는데 환승도 마다하고 그냥 걸어 집 가까이 와 버렸다. 집을 지나쳐 시장으로 가 장까지 봐 오느라 정말 많이 걷게 되었지만 운동화를 신어서 그런지 별 무리가 없었다. 다리는 무리가 없었는데 문제는 다시 배가 고파진 것이었다. 그래도 결심을 돈독히 하였다, 저녁밥은 없어....
집에 오자마자 아까의 결심은 눈처럼 없어졌다. 우선 사과를 큰 놈으로 반 깎아 배를 채웠다. 그러면 위장이 달래질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식욕은 식욕을 부른다는 비만의 대원칙이 적용되었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나는 소화제를 한 알 먹어야 했다.
전에는 뭔가가 위장 속으로 들어가면 더 이상 아무 식욕이 일지 않았다. 최근엔 배는 부르지만 위장이 한 없이 퍼져나가면서 그 여유공간이 자꾸 느껴진다는 것이다. 집에서 입는 푹 퍼진 옷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원인이 될 순 없다.
애정결핍, 욕구불만,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푼다ㅡ이런 상식적인 해석은 이제 지겨우니 안 하는 게 더 좋다. 나는 절대 먹는 것으로 풀지 못하는 타입임을 끔찍하도록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물 한 모금 못 넘기는 것으로 푼다. 만약 먹는 것으로 풀었다면 나는 엄청난 몸무게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인가? 왜 아침부터 배가 고프고 단 것이 먹어지는가? 이유를 생각했더니 간단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가 아니라 덜 받자고 작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아침 안 먹은 지난 일생은 스트레스 꾸준히 받느라 그랬나? 그건 게으른 내 위장에게 물어봐야 한다.
고등학생이 된 아들은 내 잔소리의 영역을 이제 떠난 듯했고, 걱정한다고 돈이 펑펑 굴러올 것도 아니었다. 가지 말란다고 안 갈 가을이 아니고 오지 말란다고 안 올 겨울이 아니었다. 통제하고 절제하고 구속하여 그대로 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나.
낙천적이라는 함은 곧 인정하는 것이었다. 해악이 아니라면 모든 것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동승하는 것이었다. 얼핏 너그러움이나 포기와도 닮아 보인다. 하지만 옳고 그름, 수용과 반발을 구분짓는 깔깔한 내면의 잣대가 분명하니 차라리 긍정적 쪽이라 우기고 싶다. 먹고 싶으면 먹고 먹고 싶지 않으면 안 먹으면 된다. 혈압이 높으면 혈압약을 복용하고, 갑상선이 안 좋으면 호르몬 약을 첨가해서 먹으면 된다. 뭐가 문젠가.
분명한 것은 인생은 회전목마가 아니라는 것, 되돌아 갈 순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환원이란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오로지 지금의 현상에 순응하며 앞을 보고 살아야 한다, 겸손하게....그러다 죽음이 오면 맞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믿는 구석은, 내가 변덕스럽다는 점이다. 물론 사람이 다 그렇지만 가만히 내 식욕을 관찰해 보니 도무지 항상성이 없었다. 조금 잘 먹다가, 술에서 깬 어느날 아침부터 뚝 밥맛이 떨어진다든지 그 변화의 곡선이 지맘대로다. 지금 초코파이를 들고 몸서리를 치며 음미하지만 내일은 상 줄 테니 먹어라 해도 쳐다보지 않을지 모를 일이다.
비중 있는(!) 블로거님들이 반식 다이어트에 성공, 살도 반을 덜어내는 중인데 그 덜어낸 반이 모조리 나한테 와서 얹히고 있다. 내 변덕이 하루 빨리 작동되기를 빈다만 요즘 나의 마음은 참 고요하기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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