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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혹은 기록

어제 일기

by 愛야 2008. 2. 14.

 

2008. 2. 13. 수요일 맑음. 엄청시리 추운.

 

오전

나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일기의 전형적 문구) 시락국을 끓였다.

사실은 어제밤 자기 전에 끓여 두었던 것을 다시 데웠다.

시락국은 오래 끓여야 깊은 맛이 나니까 시간을 벌기 위해 미리 끓였었다.

 

아이 학교급식 식단표를 보니 아차, 오늘 학교에서도 시락국이다.

아들은 오늘 죙일 시락국만 먹게 생겼다.

하지만 국거리를 바꾸기엔 이미 늦었다.

쳇, 이 학교는 꼭 내 메뉴를 가로챈다.

 

 

아들 보내고 한방차를 한 잔 마시며 아침드라마를 본다.

잠시 후 이번엔 커피를 한 대포 마시며 토크 프로를 본다.

잠이 온다.

어젯밤 숙면을 못하고 밤새 구불러 댕겼더니 피곤하다.

커피에 수면제도 안 넣었는데 차 마시고 다시 잠들었다.

따신 이불 속에서는 잠자는 일 밖에...

 

오후

  얼굴이 푸석하다.

목욕하러 갔다.

냉장고에서 날짜 지난 우유를 챙겨 간다.

온몸에 쳐발라야지.

 

우유를 내 손바닥에 붓는 순간 웬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

헉, 검정콩 우유였다....

온 목욕탕에 꼬숩게 소문나게 생겼다.

눈치 보여 관두고 맹렬히 때밀기에 돌입했다.

 

내 옆에 모녀가 앉는다.

둘의 체형이 너무나 꼭같다, 부피와 피부만 다를 뿐.

부정할 길 없는 유전자의 위대함이 입증되는 순간이다.

아들은 두어 군데 다른 생김새로 완전 복제가 불가능하잖아?

 

옆 모녀가 얼굴에 시커먼 팩재료를 꼭같이 바른다.

엄마가 비닐에 싼 무언가를 꺼내 먹기 시작한다.

나쁜 내 눈엔 허연 찐빵처럼 보였다.

이럴 수가...

목욕탕에서 찐빵 먹는 광경은 첨 본다.

더구나 시커먼스 특공대 얼굴로.

목욕이 힘들긴 해도 빵까지 먹어줘야 하나.

 

아삭하는 소리에 시력을 모두고 다시 보니 빵이 아니라 깎은 사과였다.

사과는 먹어도 안 우습나?

역시 우습다, 으하하.

나는 내 콩우유를 안 부끄러워하기로 결심했다.

저기에 비하면 검은콩 우유는 애교다.

거므스름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검은콩 우유를 마저 발랐다.

 

몸무게가 좀 줄었다.

어쩐지 아침에 눈 뜨면 눈두덩이 퀭하더라니.

 

아이가 목 아프고 열 난다면서 야자를 빼먹고 집에 왔다.

이마를 짚어보니 별로 펄펄 하지도 않는데?

 

어제 아침 교문 머리단속에 걸려 벌 섰단다.

그 걸린 머리 깎고 밤 11시에 벌벌 떨며 왔었다.

추운 날 벌 받고, 머리 깎고, 머리 감고 했으니 감기몸살이 안 오고 되겠나.

미리미리 머리 깎아라는 엄마의 충고를 무시한 처절한 결과다.

 

뜨거운 시락국 또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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