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아들이 오겠다고 했다. 금요일 저녁에 문자를 보냈다.
ㅡ 먹고잡은 거 있나, 장 보러 가는 중.
ㅡ 멸치볶음 비빔밥.
ㅡ 음, 넘 소박하다. 먹고자븐 거 다 사 줄게, 까이꺼 얼마한다고
ㅡ 그냥 집 밥 묵지, 언제 거창한 거 사 달란 적 있더나.
ㅡ 웅, 두 마리 취킨세트! 크크크.
ㅡ 차라리 치킨값 날 주고.
외식한 셈 치고 그 돈을 널 달라고? 그렇게는 못 하지 이 사람아, 그 만원 권 돌돌 말아 콧구멍을 후빌지언정.
이튿날 토요일 오후, 아들은 KTX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오지 않고 재수하는 친구부터 만나 수능시험을 격려한 후 저녁밥 무렵 들어왔다. 나는 곧 멸치를 소스 잘박하게 볶아 자식의 소망을 초간단 풀어주었다. 이 멸치볶음 비빔밥이 수요일쯤에 갑자기 먹고 싶더라나... 드뎌 에미가 그리웠던 거지. 크하핫.
모처럼 <가축적인> 저녁을 먹은 다음 나는 커피 한 잔 들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녀석이 어두운 베란다로 슬그머니 나갔다. 그.런.데, 아들이 바지에서 꺼낸 것은 분명히 담뱃갑이렷다! 이어 내 눈을 의심하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헐, 한 개비 꺼내 어설프게 손가락 사이에 낑군다.
순간, 야아아!! 나, 일갈했다.
너, 담배 피우냐? 이 녀석 봐라, 너너너너, 맹세했자나, 술은 먹어도 담배는 절대 안 피우고 싶다고 너 스스로 말했자나아~~~. 근데 왜 안 지켜? 언제부터야? 아니 왜 엄마 돈을 연기로 꼬실라? 그게 뭐 좋은 거라고 깨끗한 폐를 더럽혀? 피우는 사람들은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는 세상이야. 왜 시작하냐? 다들 끊는 이 마당에 왜 시작하냐고오? 건강 해치고 냄새나고 주변 지저분해지고 간접흡연으로 기피되고 하나도 좋은 거 없는데. 어디 배울 게 없어 고런 걸 배워. 담배 피우면 연애도 힘들어 쨔샤! 냄새나는 입에 키스하고 싶겠냐? 본인은 모르지만, 머리칼이며 옷에 손가락에 다 배여. 장가가면 애기 때문에 어차피 끊어야 해. 세포마다 쩔고 나서 끊기 힘드네 마네 하지 말고 지금 그만 둬, 알았어? 얼른 대답해, 얼른!! ( 잠시 생각난 듯 한 박자 쉬고 ) 그라고, 너 왜 국산 놔 두고 말** 피우냐?
여름방학 지나고 시작했다니 얼마 되지 않은 지금 끊어야 한다. 봄에 군대 가면 오죽 담배가 맛있을 것인가. 엄마가 사실을 아는 것 같았고, 또 모른다 해도 어차피 방학 중에 들킬 거라서 아예 자수하는 시추에이션을 만든 거란다. 어이구 기특도 하다. 해 준 멸치 비빔밥이 억울하다. 애기 같은 얼굴에 담배를 어설피 무는 꼬락서니라니.... 암만 춥다고 군불을 입에다 지피면 쓰나.
담배를 멈추게 하는 묘안이 없을까. 머리를 돌돌 굴린다. 곧 겨울 방학이고 입대까지 몇 달, 우찌 그 꼴을 보나 말이지. 저 정도 협박성 훈계로는 안 통할 거 같다. 그럼 고문을... 해?
1. 용돈을 확 끊는다.
2. 목을 조른다.
3. 밥을 안 준다.
4. 최면을 건다.
5. 꼬실라 버린 돈을 돌려달라 볶는다.
6. 담배를 무지무지 혐오하는 예쁜 아가씨를 소개해 준다.
7. 잘 때 금연침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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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효과있을꼬꼬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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