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집에 있다 보면 가장 많이 먹는 것이 커피다. 허전해서, 심심해서, 밥 먹었으니, 건빵 먹고도, 심지어 밤 12시 잠자리에 들어서도 마시고 잔을 머리맡에 딱 두고 잔다. 커피를 많이 마신 날 오줌 배출량이 많긴 할지언정 잠을 못 잔다는 부작용은 내 사전에 없다. 좀 줄여야겠다 싶은데 평소 몸에 이로운 음료는 마시지 않는 터라 잘 안 된다.
최근엔 저녁 무렵에 종종 속이 몹시 쓰린 듯하였다. 수십 년째 위장에게 참 못할 짓이다. 그럼 집에 커피 외 다른 차가 없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녹차, 목련차, 쟈스민차가 있다. 일 년 훨 넘은 것들이다. 차구가 없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뒤져보니 그럭저럭 구색은 있다. 문제는 귀차니즘과 고집.
하지만, 사람이 나이 들면 기특해지기도 한다. 언제나 큰소리 팡팡 치지만 속으로는 육체의 낡아감이 두려운 것이다. 점심 전, 습관처럼 커피통에 가려던 손을 잠시 멈춘다. 아까 아침에 대포로 한 잔 했으니 커피는 점심 후로 미루자. 대신 쟈스민차를 마시기로 한다.
나는 꽃차는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향수나 화장품을 물에 타서 마시는 듯하다. 그럼에도 자스민차를 택한 이유는 단지 많이 남아돌기 때문이다.
두 종류의 쟈스민차가 있다. 왼쪽은 원양 항해사인 남편이 가지고 온 것이라고 지인이 주었고, 오른쪽은 내가 깡통시장에서 산, 노란색 통에 들어있는 대표적인 자스민차다. 아무래도 왼쪽 말아둔 것이 고급하지 싶다. 그렇다면 좋은 것부터 먼저.
잔에 알갱이 세 개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둔다. 꽃차는 잎차보다 물이 뜨거워야 한단다. 우러나는 과정이 궁금하여 골똘히 보고 앉았다. 돌돌 말린 차 알갱이가 염소똥 같다..... 음, 고상하게 잘 나가다가 이 무슨 어른답지 못한 발언.
나는 차 맛을 아직 모른다. 일단, 두 손으로 잔을 감싸고 그 따신 기운부터 느낀다. 차 양을 적게 하였더니 향이 은은하고 역하지 않다. 한 모금. 나쁘지 않다. 쟈스민차는 위 속을 깨끗이 해주고 만성 위질환을 낫게 해 준다 한다. 또 심리적 안정뿐 아니라 내분비계통의 정상화를 돕는다니 어쨌든 <몸에 좋은> 차라는 말이렷다.
더구나, 청초한 꽃과 더불어 향기가 매혹적이어서 꽃말도 "사랑스러움""관능적인""당신은 나의 것"이란다. 흐메, 오늘부터 목숨을 걸고 마셔야겠다. 꽃향유의 왕으로 사랑의 묘약 구실을 톡톡히 한다는데 나는 염소똥 운운하다니, 깊이 뉘우치는 중이다.
고르라면 꽃차보다는 녹차가 좋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린 나의 혀 돌기에는 일견 밍밍하게 느껴지긴 하다. 그러나 떫고 씁쓸한 풀냄새, 그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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