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간이역
-이미란
나는 추억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늘도 인연이라는 완행열차를 타고
당신이라는 간이역을 찾아간다
시간이 지나가는 길목엔
처음 같은 두려운 풍경이 기다린다
어느 날은 대낮의 플랫폼에서
아직은 낯선 당신 얼굴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어두운 대합실에서
연착을 알리는 당신의 깃발을 찾기도 한다
당신은 나를 가벼운 눈길로 배웅하라
뜨거운 악수는 생략되어도 좋다
진한 이별의 말은 나누지 않아도 좋다
당신을 만나기 위한 많은 날들과
당신을 만나고 돌아선 많은 날들을
천천히 기억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리니
당신의 이름이 과거로 명명됨을 슬퍼하지 마라
또 다른 간이역을 찾아 떠나는 나는
당신의 눈빛에 이 말 한 마디를 남겨둔다
나는 추억을 부정하지 않는다
추억이 된 당신이 못내 서러울 뿐이다
-시집『내 남자의 사랑법』(황금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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