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천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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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인이 시키는 대로 갔다, 강으로.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하지 않기 위해 강으로 갔다.
인생이 얼마나 자객 같은지 성토하지 않을 것, 쓰러지지 말고 흔쾌할 것, 상처의 기승전결에 대해 발설하지 말 것. "침도 피도" 튀기며 말로 뱉는 순간, 모든 것은 현실이 되어, 남이 토하고 간 "인생의 어깃장"마저 나에게 달려들 것이다.
모든 "몰골"들은 대중 보편일 뿐이다.
그뿐이다.
그러므로 강에 가서 말할 필요가 없다.
도리어, 말하지 않고 돌아오기가 얼마나 외로웠던가.
강가에 핀 남루한 꽃에조차 들키지 않았음은 또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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