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ㅡ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 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 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원 때문에 십원 때문에 일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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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장황하게 기ㅡ인 시에서 마음을 파고드는 구절은 첫 행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이다. 시의 나머지 부분은 모두 그 속에 들어있다. 정말 그러네.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고 열통 터뜨리다가 급기야 싸늘해지네. 내 소심한 처신을 여지없이 들키게 만든 <만>에 흠칫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조그마한 사람이니까 그렇다. 조그맣지 않은 일에 분개한들, 크게 뿌듯할 것도 없다. 정작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건 조그마한 것들이 아니던가.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벅찬 마음으로 돌아온 집구석이 텅 빈 냉장고에 난장판 같다면, 나의 불행지수도 순식간에 상승될 것이다. 나는 조그마한 것에 일희일비일노 하는게 맞다.....고 다독여도 가슴 한 귀퉁이가 편치 않은 요즘이다.
주제와 상관없이 엉뚱하게도, 시인이 왜 간호사 대신 굳이 "너어스"라고 했는지 의아하다. 너.어.스.가 뭐지? 심오한 이중적 의도가 숨겨져 있는데 내가 못 찾나? 골똘히 생각했을 정도다. 시인이 설마 저런 영어도 한글도 아닌 단어로 지성을 뽐내고 싶기야 했을라고. 민초의 시인 김수영이 아닌가. 더구나, 1930년대 정지용의 모더니즘으로부터 수십 년 건너온 시대에 새삼 말이다.
시인의 선하고 큰 눈망울을 본다. 그의 시에 공감하는 한 우리의 시대는 제자리걸음이다. 스스로가 아니면 누구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프게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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