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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필로미나

by 愛야 2014. 5. 18.

 


 

 

 

국적 : 영국, 미국, 프랑스

러닝타임 : 98분

감독 : 스티븐 프리어스
출연 : 주디 덴치(필로미나), 스티브 쿠건(마틴 식스미스), 시몬 라비브(케이트 식스미스)

 

 

어느날 필로미나는 딸에게 담담히 말했다.

오늘은 그 애의 50세 생일이란다.

그애가 누구인데요?

내 아들.

 

50년 전 필로미나는 10대 미혼모로서 수녀원 미혼모 시설에서 아들을 낳았고, 수녀원에서 죽어라 일을 한다.

그곳에는 많은 갈 곳 없는 미혼모들이 노동력을 제공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수녀원 측은 아이가 서너 살때 필로미나의 동의나 허락도, 마지막 인사도 없이 아들을 입양보냈다.

소식을 듣고 문으로 달려가 매달린 창살 너머, 아들은 막 누군가의 차를 타고 떠나는 중이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어린 엄마의 실성한 듯한 절규 따위는 아랑곳 없었다.

수녀원은 입양으로 많은 후원을 받았을 것이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떠나간 아들의 50세 생일 날, 주름 진 필로미나는 선언한 것이다.

이제 내 아들을 만나야겠다.

평생 발설하지 않은 과거를 가족과 타인들에게 밝히기란 대단한 용기였을 것이다.

 

전직 BBC 기자 마틴과 동행하여 수녀원으로 가 입양사실과 아들의 행방을 물었으나 그들은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

서류는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고, 미혼모들의 아이들을 임의로 입양 보낸 사실도 모른다 잡아뗐다.

기사 출신인 마틴의 네트웍을 통해 아들을 수소문하였다.

아들은 미국 명문가에 입양되어 대통령 대변인까지 지낸 정치가로 성장했으나 몇 해 전 이미 사망하였다.

아들은 동성애자였다.

필로미나는 아들의 죽음에 몹시 상심하였으나 동성애자라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았다.

기자 마틴은 필로미나가 못 들었나 싶어 재차 알려주었지만 표정과 행동은 담담하였다.

나는 그들의 타인에 대한 수용력에 참으로 놀랐다.

그가 선택한 동성애자로서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봐 주는 것이다.

 

"동성애자였다는 것에 놀라지 않으시네요."

"멜빵바지 입은 어린 시절 사진을 보는 순간, 자라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얼핏 했어요. HIV로 죽었나요?"

엄마가 찾기 전에 이미 죽어버린 동성애자 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그리운 아들.

아들은 동성애자였으므로 만나볼 손자도 없었다.

그녀는 대신 아들의 연인이었던 파트너를 만나 아들에 대한 추억과 회고를 듣는다.

듣는 내내 그녀는 그리움과 자랑스러움으로 미소를 지었다.

"내가 키웠으면 그렇게 훌륭히 자라지 못했을 거예요."

필로미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필로미나는 아들의 성장기와 청년기의 흔적을 더듬는다.

아들의 주변인에게 계속 물었던 것은, 아들이 입양과 생모를 기억하는지, 조국 아일랜드를 언급한 적이 있는지였다.

그녀는 아들이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기를 바랬지만, 아무도 들었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사실 아들은 자신이 아일랜드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이 투병하다 삶을 마감하고 땅에 묻힌 곳은 놀랍게도 바로 첫 출발지 수녀원이었다.

수녀원측은 필로미나에게 아들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을 뿐더러 아들을 찾아 미국까지 가게 방관하였다.

아들이 병들어 수녀원을 방문했을 때 필로미나에게 연락만 해줬더라도 모자는 만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돌고 돌아 결국 필로미나는 수녀원 뜰에 있는 아들의 묘비 앞에 다시 섰다.

마틴은 수녀원의 이기적 행동과 모르쇠를 처벌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필로미나는 생각지도 않는 일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그를 말렸다..

그들이 밉지만 내 분노로 그들을 벌하진 않겠다 하였다.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한다고 하였다.

 

용서라...

 

덮는 것은 용서와 동일하지 않다.

필로미나가 그들을 고발하지 않는다면 다른 필로미나들은 어쩌라고?

그녀들 또한 아들 찾아 미국으로 떠나고 헤매어야 하나?

다행히 필로미나는 그들의 죄악을 덮어두진 않았다.

마틴과 함께 그 모든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하여 세상에 알렸던 것이다. 

법적 고발이 아닌 사회적 고발인 셈이다.(출판 후 파장이 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영화 마지막엔 그들의 실제 모습도 보여주였다.

 

스토리만을 보면 어쩌면 진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주디 덴치라는 배우는 감정에 휘둘려 최루탄 모성을 연기하지 않았다.

단 하루도 아들을 잊은 적이 없다는 그 뼈아픈 모성을 그녀는 잘 다스렸다.

극적 반전이나 강한 임팩트를 노린 연출이 아니었다.

몸을 던져 처절하게 울고, 감동과 인상을 남기기 위해 기를 쓰지 않았다.

물 흐르듯 일상적으로 풀어낸 영화였다.

아들의 흔적을 추적해가는 필로미나와 마틴의 유머러스한 티격태격이 영화를 어둡지 않게 했다.

김혜자의 부릅뜬 눈과 눈물, 혼신의 연기的 연기가 문득 떠올랐다.

주디 덴치.

나이는 이미 80대이다.

그녀의 작고 뚱뚱한 몸과 당당한 표정은 어떤 아름다움과도 비교될 수 없는 그녀의 평생이었다.

 

4월 말경, 나는 세월호에서 오는 충격과 우울 속에서 나를 건져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분노와 몸서리와 이상한 혼돈으로 T.V를 부술 것 같았다.

영화를 볼까.

시끄럽고 가당찮은 영화 말고 진심을 담은 영화를.

그래서 영혼을 일으켜 늦은 오후의 햇살을 타박타박 밟아 <필로미나>를 보러 갔던 것이다.

영화 한 편으로 가슴의 무거움이 해소되었냐고?

그럴리가.

하지만 돌아오는 길의 나는 한결 순해졌다.

영화관 근처의 이팝나무 하얀 꽃들을 한참 올려다 보았다.

다시는 이팝나무를 까묵진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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