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전 뉴스가 나를 웃겼다. (9시는 아니고 이브닝 정도 짧은 시간대였다고 기억)
최근 여성들의 스타킹 색상 매출순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커피색보다 누드스킨(일명 살색)과 검정이 많이 팔린다는 소식 아닌 소식이었다.
세세한 수치까지 보여주다니, 이 난리 정국에 스타킹 밀착취재여 뭐여?
뜬금없는 뉴스에 나는 호탕하게 웃었다.
야, 우리나라 뉴스도 무려 코믹한걸?
스타킹 기사를 쓰면서 기자는 스스로 대견했을 끼다.
숨은 뉴스를 찾아낸 뿌듯함으로.
지롤을 하세요.
#2.
또 며칠 전, 나는 아파트가 붕괴하는 줄 알았다.
아침 9시도 되기 전, 생애 통틀어 내 집에서 그렇게 대빵 같은 굉음은 들어본 일이 없었다.
뛰쳐나간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의 참상.
싱크대 상부장이 앞으로 완전 떨어져 내려 아래장에 걸쳐져 있는 것이다.
간, 심장, 십이지장, 허파, 모든 내장이 내려앉아 후들거리고 심지어 뇌까지 후들거려 손이 막 떨렸다.
앞으로 75도쯤 엎어져 버린 장 사이로 쏟아져 나온 파편들이 보였다.
6.25 난리는 난리 축에도 안 낑가주고 싶었다.
그 와중에 으악, 포트메리언 커피잔 또 깨진겨? 이런 생각도 지나갔다. (한번 깨먹어 다시 샀거덩)
오후에 싱크대 기술자가 오기까지 나는 생전 먹어본 적도 없는 우황청심환이 먹고 싶었다.
기술자가 말했다.
다년간 꾸준한 위층으로부터의 습기 때문에 왕못도 버티지 못하고 부식, 절단되어 버린 것이라고.
과연 기술자는 기술자였다.
드륵드륵 벽을 뚫어 더 튼튼한 너트로 고정했고, 장을 분해 조립해서 다시 달았다.
그가 떠나고 난 뒤 공사의 흔적까지 더해져 더욱 난장판의 집이 나에게 남겨졌다.
재난복구의 현장이었다, 봉사자는 달랑 한 명.
위험한 파편들만 쓸어 정리한 후 나머지는 엄두가 나지 않아 온 집에 널어둔 채 나는 씨러졌다.
아침에 놀라서 내 방을 뛰쳐나간 후 처음으로 몸을 뉘었다.
두 다리가 뭉쳐 뻐근했다.
하지만 얼마나 행운인가.
만약 설거지라도 하느라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면 나는 지금 이부자리가 아닌 병원이나 영안실에 누웠을 거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냉장고와 나는 무사하였다.
#3
누군가는 여전히 처절하게 통곡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무심하다.
비겁한 누군가는 목매어 죽고 더 비겁한 누군가는 불알에 손톱이 안 들어갈 정도로 쫄아 있을 것이다.
슬픈 4월은 이렇게 소란하고 삐걱대며 오고 또 가는 중이다.
그래, 좋다.
가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다만 언제나 돌아올 것이라.
그날 손석희가 앵커 브리핑에서 내 마음을 눈치채고 읊어 주었다.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하여
그 아침과 그 봄이
돌아오는 것이라고
ㅡ작가 김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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