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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꼬리뼈

by 愛야 2015. 5. 25.


1.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날 때마다 꼬리뼈가 시큰거리며 아팠다. 포개진 방석 2개를 무색케 한 통증이 잠깐 지속되다 사라지곤 했다. 원시 이후 잊었던 내 꼬리뼈가 거기 버젓이 있었다. 사라진 꼬리에 대한 그리움으로 꼬리뼈는 끈기있게 기다리는 것일까. 인간이 긴긴 지구역사의 도돌이에 굴복하여 다시 네 발로 기게 될 때, 꼬리는 서서히 봉인 해제되어 뼈를 10개쯤 더 복제할지도 모른다. 진화란 사멸하지 않는 한 종결이 없는 법이다. 우주의 관점에서 멈춘 것 같은 우리의 이 시대도 짧디짧은 한 점으로 진행 중이다. 말하자면, 꼬리뼈는 언젠가 부활할 꼬리를 향한 야망이 아니겠는가. 그럴 야망도 아니라면 대체 꼬리뼈는 왜 은밀히 남아있다가 고작 통증으로 존재감을 펼치나, 젠장.


정형외과에 갈 생각을 하니 수줍어진다. 내 꼬리뼈를 의사에게 알림과 동시, 자 어디 한번 봅시다, 이 말을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 진찰용 비닐 침대에 난처하게 엎드려 나는 꼬리뼈를 허락해야 할까. 차마 그럴 수 없다고 앙탈하자면 그럼 뭐하러 병원에 왔느냐고 힐난을 당할 것이다. 얼마나 아파야 꼬리뼈를 의사에게 내줄지.


누우면 어깨가 눌려 아프고 앉으면 꼬리뼈가 아프다. 남은 한 가지 자세는 그럼 직립인가? 인류임을 이딴 식으로 증명하다니, 초라하다.  

 

2.

햇양파가 많이 났다. 값도 싸서, 3천 원어치 샀더니 22알이나 된다. 내가 좋아하는 초간장 절임을 할 참이다.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리는 사이 양파 냄새는 휘발하여 집에 가득했다. 냄새는 나를 재촉하였다. 꼬리뼈 한 번 아플 각오하고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적당한 크기로 써는 동안 내 눈은 양파와 슬픔을 나눈다. 통에 나누어 담고 펄펄 끓인 간장물을 부었다. 뜨거운 맛을 본 양파는 놀라서 사각거린다. 한 통은 아부지 갖다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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