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겨울 들어서며 몸무게 3킬로그램을 덜어내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입이 게으르기 때문에 빼자고 마음먹으면 까짓거 언제라도 뺄 수 있다는, 말하자면 나름 자만심이었다.
하지만 아픈 어깨와 추위로 행동범위는 점차 좁아졌고, 무기력의 우물에 빠져 정지모드로 긴 겨울을 지냈다.
말 그대로 마음만 먹었다는 말이다.
봄이 되었다.
마음먹은 지 거의 반년이 지나가는데 3킬로 덜기는커녕 나날이 세포분열까지 했다.
나의 자만심은 나잇살이라는 강적을 만난 것이다.
흔들리는 뱃살은 이대로 영원한 재산이 될 징조가 보였다.
위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 산책을 위해 운동화를 발에 꿰는 빈도가 조금씩 늘었다.
방에서 신발까지가 너무 멀 뿐, 현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여름이 왔다.
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땀쟁이 나는 곧 땀을 폭탄 방출하며 허덕일 것이고, 밥맛도 더더더더 잃을 것이다.
기회는 바로 여름이다!
계절에 묻어가는 비겁함인들 뭐 어떠리.
나의 기진맥진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공원 산책 때 훌라후프 코스를 넣었다.
#2.
공원 입구에는 몇 가지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운동기구에는 흥미 없는지라 나는 그 중 훌라후프만을 애용한다.
가벼운 어린이용이 많고 묵직한 것은 두어 개뿐이었는데, 좀체 내 차례가 닿지 않아 한동안은 그냥 지나쳤었다.
어느 날 눈에 딱 들어오는 후프가 있었는데 다행히 그것을 돌리는 사람은 잘 없었다.
원 크기는 그다지 크지 않으나 몸에 닿는 표면이 넓적했고, 무엇보다 묵직하여 돌리는 맛이 났다.
숫자는 되도록 천천히 센다.
하아~나아~, 두우~우울, 숫자 하나에 후프는 두 바퀴 돈다.
백 번 세면 이백 번 돌린 꼴이다.
후프 다음 40분 가량 걷기를 한 후, 공원을 떠나기 전 한 번 더 후프를 할 경우도 있다.
이쯤 하면 나의 피하지방&내장지방은 파편이 되어 다 튕겨야 옳지 않나?
끈질긴 것.
어제도 저녁 먹은 후 공원으로 갔다.
당연 첫 코스로 단골 훌라후프를 찾았는데..... 없다!!
지금 누가 사용 중인가 봐도 아무도 후프를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어딜 간 거야?
후프걸이와 주변까지 둘러 봤으나 딱 그 후프만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공원의 훌라후프를 메고 자신의 집으로 갔다는 말이다.
언뜻 아가씨 둘이 떠올랐다.
며칠 전 아가씨 둘이 대형 후프를 돌리느라 깔깔거리고 난리였다.
무겁고 큰 후프를 떨어뜨리고, 서로 타박 주며 웃고, 집에서 나온 차림새였다.
마침 나는 끝났기에 내가 돌리던 후프를 후프걸이에 걸려다가 한 아가씨에게 주며, 이거 잘 되니 해 봐요, 했다.
와아, 훨씬 잘 되네, 소리를 뒤로 들으며 나는 그 자리를 떠났었다.
그리고 며칠 후 바로 그 후프가 사라진 것이다.
물증도 없는 마당에 그날의 씨스터즈를 무턱대고 의심할 순 없다.
하필 배밭 갓끈 사건인지 모르니까.
하지만 음음.... 그 씨스터즈가 떠오름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나는 정말 분노가 치밀어, 신고해서 근처 CCTV라도 파악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큰 후프, 긁혀 표면이 트실트실한 헌 후프를 둘러메고 가는 모습을 색출하고 싶었다.
낡은 후프 하나 내 집으로 가져간다고 뭐 신고씩이나? 이게 훔친 축에나 들 물건이야?
범인은 이처럼 예사롭게 생각하는 걸까?
야야야, 그거 훔친 거 맞거덩요!
가져다 국 끓여 먹을 거라면 불쌍하기라도 하겠다.
대체 어떤 사고방식으로 공공의 물건을 가져가는지 알 수가 없다.
#3.
모처럼 탄력받은 운동이었는데, 3킬로 감량에 적신호다.
똑같은 훌라후프나 검색 드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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