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야, 니 오백 원 있나?"
"아니."
"그 정도 돈은 쫌 가꼬 댕기라."
"오백 원 머할라꼬."
"내려서 $%#@" (마침 버스 안내방송이 나와서 안 들림)
나는 내가 고개를 조금 젖혀 그 녀석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 미소까지 은근히 입가에 머금고 말이다!
그것은 그들의 대화에 청중으로서 끼어들었다는 증거였다.
고백하자면 "니 오백 원 있나?" 하는 순간부터 그 아이들이 귀여워 죽을 것 같았다.
초등학생이냐고?
아니, 적어도 고등학교 2-3학년은 되어 보이는 수염 거뭇한 덩치들이었다.
더 웃기는 것은 이런 쪼잔한 대화를 과장이나 장난기 없이 심드렁하게 나누더라는 것이다.
이 녀석들은 유머의 고수가 아닐까?
나는 그들이 나의 미소를 눈치채기 전에 시선을 거두고 차창밖에 골몰하는 척했지만, 귀는 녀석들에게 가 있었다.
진심으로 오백 원을 녀석들에게 쾌척하고 몰래 뒤따라 가고 싶었다.
그 거금으로 뭘하나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2
원래 나는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갓난이는 물론, 정신없이 날뛰며 요구만 하는 꼬마들, 말대꾸 일삼는 학령기 아동들, 다 피곤한 존재들이었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두려움일 가능성이 더 크고, 두렵다는 것은 '돌봄'이 전제된 감정이었다.
중학생보다 고등학생이, 낮은 학년보다 고학년이 마음 편해지는 현상만 봐도 알만했다.
그런 내가 대학졸업 이후 줄곧 아이들과 관련된 직업만을 가졌었다.
아이러니하지만 내가 만난 그 아이들을 사랑하고 예뻐했다.
아이들이 어떤 잘못을 해도 꾸중을 할지언정 진심으로 미워지지 않았다.
아이들이니까,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새끼들이니까.
가만히 보면, 나란 사람은 놀이역할이 대단히 부족한 사람이었다.
쎄쎄쎄 놀아주고 케어하는 건 뻘쭘하기 짝이 없었고, 그건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였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아끼면서도 나의 실생활 속으로 아이가 들오는 것은 어려워했다.
밤 12시, 1시에도 학생의 상담전화는 기꺼이 받을지언정 누가 우리집에 아기를 데리고 온다면 겁냈다.
일 쉬며 유기농 백수로 지내는 요즘은 어떤가.
여전히 나는 아이들에게 무덤덤해 보였다.
갓난아기들을 보면 함빡 자지러진다든가, 이뻐라를 연발하기는커녕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다.
아, 이건 어쩌면 아이들에 국한된 성정이 아닐지 모른다.
전반적 세상만사를 대하는 나의 자세, 이게 더 정확할 것이다.
공원에서 만난 준서. 마빡에 혹 났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좀 달라졌다는 사실을 혼자 은밀히 알고 있다.
아기들은 물론 초.중.고. 심지어 대학생까지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 일했던 영어학원 초등학생들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이 사달라고 보채지도 않는 아이스크림을 자발적으로 수시상납하였다.
하물며 오백 원으로 고품격 대화를 나누는 저 형아들이 어찌 귀엽지 않을 것인가.
더 나아가, 공중전화에서 전화하는 휴가 군인의 새까만 목덜미가 가여워서 한참 서서 보기도 했다.
나이를 점점 상향조정해 가며, 이러다 전 인류가 다 귀여워지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지하철에서 떠드는 염치없는 노인네들은 혐오스러운 거 보니 아직 거기까진 영역이 도달하지 못했다.
한 가지 용의점은 있다.
아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들이 지나온 연령대의 아이들이 점진적으로 귀여워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시꺼먼 군인 아저씨가 귀여워 보이는 기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단지 아들이 흘리고 간 시절의 이삭줍기라고 치부한다면 나의 개과천善이 빛을 잃을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내가 둥글둥글 선량하게 변했다고 우길 작정이다.
#3.
여기까지 읽으시고, 애야 님 손주 보고 싶군요, 하는 댓글을 준비하신다면 그건 큰 오해다.
어림도 없다.
'손주'라는 단어가 내 댓글에 등장하는 날 난 울지도 모른다. (무셔븐 얼라들...)
나는 늦은 결혼과 출산으로 아직 25세 대학생의 엄마, 뒤늦게 착해진 엄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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