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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취조의 기술

by 愛야 2015. 11. 25.

#1

공원을 빠져나가는 사잇로 들어서서 몇 걸음 옮기던 참이었다.

어디선가 데시벨 높은 여자의 목소리가 쩌렁 울렸다.

자세히 보니 어두컴컴한 벤치에 부부인 듯한 중년 남녀가 앉아 있었다.

동백꽃이 어둠 속에서 희다.

 

"희경이? 첨 듣는 이름이네? 내 아는 사람 중엔 이 이름 없는데."

"....."

여자는 손가락으로 연신 휴대폰 화면을 끌어올리며 흥분하였다. 

말 없는 남자는 목을 빼서 기웃이 넘겨다 보고 있었다.

상황으로 보아 그 휴대폰은 분명 남자 자신의 것일 텐데, 검열당하는 자는 공손하다.

"이건 또 누고? 고순덕이, 김연숙이....."

여자는 휴대폰 속 여자 이름을 다 읊을 작정이다.

"$@^&*."

"그기 뭔 말도 안되는 소리고?"

죄지은 사람은 목소리가 기어들고, 취조관은 복장이 터진다.

 

나는 걷는 속도를 최대한 떨어뜨렸지만 굼벵이가 아닌 관계로 그 앞을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똥 누일 강아지라도 있었으면 근처에 풀어놓고 얼쩡거릴 텐데, 아쉽게도 곧 청취의 범위를 벗어났다.

공원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실성한 여자처럼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개그 프로의 한 장면 같았다.

그런 장면에선 왜 꼭 여자는 뚱뚱하고 남자는 가냘픈지, 덩치의 법칙이라도 있나벼.

 

#2

저녁 잘 먹고 둘이 산책 나와서 우발적으로 다투게 되었을까.

아니면, 집에서 싸울 환경이 되지 않아 차라리 공원에 가서 싸우자 작정하고 나왔을까.

후자라면 가족보다 공원의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에게 보이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일까.

 

그렇다면, 이 참에 생각해 보자.

취조의 장소는 어디가 적당할까.

집, 아니면 바깥?

각각 장단점이 있다.

 

바깥이면 고문에 한계가 있다.

외침, 쌍욕, 눈물, 과거사, 인신공격을 마음껏 할 수 없다.

그넘으 남의 이목과 체면 때문에.

하기는 우리나라에서 체면이란, 폭주를 막는 브레이커로서 역할이 크다.

사람들 지나다니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는 남편 목 조르기도 불편하고, 남편도 자백하기 난처하다.

"으...켁켁, 딱 한 번 바람 폈...." 하는 찰나 동네 아지매가 벤치 앞을 지나간다면 피차 얼마나 날벼락이겠는가.

그걸 잘 알기에 바깥을 선택했다면, 막장으로 갈 뜻이 없고 고저 살짝 맛만 보여줄 의도라고 봐도 된다.

 

오직 확실한 자백을 원한다면 방, 사방이 벽으로 막히고 입 틀어막을 베개도 구비된 곳이 좋겠다.

단점은 말려 줄 존재가 없고, 혹 꼭지가 돌아 자기 살림을 셀프 박살 내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선까지 갈 것이지 그 수위를 번개처럼 계산하는 게 우선이지 싶다.

 

산책을 나와 우짜다가 다툼이 났다면, 그리고 동백나무 앞 벤치, 아름다운 벚나무 단풍 아래 앉아 버렸다면, 

모든 의혹에 대해 잠시 눈을 감으라.

그 순간만은 상쾌한 밤공기를 느낄 일이다.

 

그 남편의 생사여부는 모르겠으나 수많은 여자의 이름을 삭제하는 거로 타협하였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마른 목도 축일 겸 막걸리 둬 병 사 들고 서로 눈 흘기면서 집구석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사는 것, 까짓 오십 보 백 보.

 

의아한 사실은, 그때 주워 들었던 여자들의 이름을 내가 지금까지 기억한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은 물론 작가까지 기억이 안 나 허망한 요즘의 내 기억력으론 상당히 불가사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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