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밥 먹다가 혀를 모질게 깨물었다.
악 소리 지를 만큼 놀라고 아팠다.
"입안의 혀"란 싹싹하고 말 잘 듣는다는 뜻이련만 그 말이 무색하다.
어금니와 혀의 협업이 딱딱 박자 맞춰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다.
신체부속기관들이 점점 제 맘대로 논다.
혀를 길게 빼물고 거울로 보니, 상처도 났고 순식간에 피멍이 들어 있다.
심신미약 상태도 아닌 제정신에서 뭘 그리 혀가 깨춤 추게 먹었느냐면
무려
김치볶음밥.
냉장고에 김치가 잔뜩 밀렸다.
새 김치, 신 김치, 더 신 김치, 재활 불가능 김치, 묵은지,
그리고 얼마 전 울아부지가 맛없다고 반품하신 김치까지.
그중 신 김치를 선택, 김치볶음밥으로 환생시켰다가 이 자해소동이다.
아쉽게 밥숟가락 놓고, 커피 한 잔 미지근하게 마시는 거로 저녁밥을 끝냈다.
빨간약 대신 어디까지나 소독 차원에서 소주로 가글이라도 해야 할까.
가글하다가 실수로 목구멍으로 넘기면, 아이고 절대 고의가 아닌데 이를 어쩌나?
#2
저녁을 부실하게 먹고, 그래도 산책은 해야겠기에 집을 나섰다.
앗, 파란불이다.
종종 뛰다시피 횡단보도에 도착했더니 그만 착 빨간불로 바뀌어 버렸다.
모냥 빠지게 괜히 뛰었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오늘 밤도 신호등 재수가 없다.
곁에 선 은행나무 잎들이 어느새 제법 노릇노릇하다.
구린내는 사라졌다.
그것은 열매도 사라졌다는 말이다.
작년 은행나무에 대해 투덜거렸던 것이 벌써 1년 전이라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시간이 막 달아난다.
내 인식보다 세 배쯤 빠른 속도다.
1년 만에 나를 만나는 사람은 내가 3배쯤 늙어 있어서 3년 만에 만났나 갸우뚱 할 것이다.
곧 노란 은행잎들이 거리에 마구 흩날리겠지.
3배속으로.
#3
내일은 영화 보러 가야겠다.
딱히 점찍어 둔 영화는 없다.
단지 아주 오랫동안 영화 한 편 보지 않은 기분이 들어서다.
그동안 띄엄띄엄 영화를 안 본 것은 아닌데 아무 것도 마음에 남지 않은 탓이다.
마음에 남지 않는다는 것, 다시 그립게도 만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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