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러다 블로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또 잊어먹겠어.
커버를 덮지 않은 자판 위에는 먼지가 하얗다.
자꾸 써야 쓸거리가 또 자라나오는 법인데, 손을 놓고 있으니 점점 메말라서 사막이 되어 간다.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많은 이웃이 문을 닫았거나, 반년 혹은 1년 전 어느 날짜에 멈추어져 있기 다반사다.
나란 인간이 새 이웃을 창출하는 능력은 없고, 점점 동심원이 작아질 뿐이다.
#2
그건 그렇고, 깍두기를 담그려고 무를 하나 사 왔다.
요즘 무들이 왜 그리 뚱뚱한지, 살 때 이미 아차 싶었다.
하지만 달랑 하나 사는 주제에 이러니저러니 하기도 성가셔 그냥 주는대로 가져왔다.
언젠가도 말했듯이 나는 큰 식도 아닌 큰 과도를 쓴다.
나는 칼이 무섭다.
솔직히 말하면, 이따만한 식도를 휘두를 요리도 하지 않는다.
대부분 큰 과도 정도로 해결이 되는 수준이고, 그건 즉 쓰기 나름이더라는 말이다.
심지어 수박조차 과도로 해결하니까.
문제는 무가 크고 똥글뚱뚱딴딴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잘 썰어졌다.
그런데 제일 굵은 가운데 부분에 이르러서 그만 무에 칼이 박혀서 움직이지 않았다.
흥부 박 타듯이 앞뒤로 설겅설겅 움직였는데 어느 순간 칼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당겨도 밀어도 두드려도!
난감해서 힘을 쓰며 끙끙대느라 진땀이 다 났다.
그렇다고 너무 세게 잡아채면 반동으로 칼이 퉁겨져 언젠가처럼 사고를 당할 것 같아 겁이 났다.
결국 싱크대 아래에 감춰두었던 큰 식도를 꺼내 박혀있는 작은 칼 옆을 구출하듯 썰어 나가야 했다.
그러다 나는 혼자 크크큭 웃었다.
아무리 뚱뚱하기로서니 고작 무인데 그걸 못 잡아서 고구려 장수처럼 쌍칼로 설치다니.
왜 그런 말도 있지 않나, 대장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한다는.
그만큼 무가 베기 쉽고 연하다는 말일 텐데, 이건 무의 반란인가.
만약 이 꼴을 남이 보았다면 갓 결혼한 새댁도 아니고, 얼마나 같잖고 위선적으로 보일까.
큰 칼의 활약으로 작은 칼을 빼내어 무를 깍둑 썰고, 절이고, 버무려 작은 통에 담으니 딱 한 통이다.
밤늦게 돌아온 아들은 빨갛게 완성된 깍두기만 보았을 뿐이다.
내가 무와 싸웠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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