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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러記

부스러記 25, 아직도 사랑하여

by 愛야 2022. 12. 24.

  2022. 10. 18 화요일

엄마를 요양병원에 모신 이후, 병원 내 코로나 환자 발생으로 3개월 만에 처음 면회를 했다.

언니는 하필 오늘이 수십 년 전 돌아가신 형부 기일이라 그 준비로 빠졌다.

썰렁한 면회실로 휠체어를 타고 나온 엄마는 그동안 가족을 잊은 듯했다.

휠체어 아래 무릎을 꿇고 잠깐 마스크를 내리며, 엄마 막내 왔어요, 소리치니 그제야 시선을 맞춘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는 순간 엄마의 첫마디, 집.에. 가.자.

말문이 턱 막혔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곁에 있는 덩치 큰 남자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지 못하였다.

누구라고 여러 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뿐인 아들을 남 보듯 건성 시선을 지나쳤다.

집에 가고 싶게만 만들 뿐 낯설고 피곤한 면회가 엄마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혹시 우리 마음 편하기 위한 일방적 행사가 아닐까.

 

돌아오는 차에서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냥 엄마 집에 모시고 오까, 아부지 안 계시니 덜 힘들 거야, 내가 다 할 수 있어.

오빠는, 고마 니 몸이나 챙겨라, 퉁박을 주었다.

잠시 슬펐던 우리는 30분도 지나지 않아 웃으며 헤어졌다.

자식새끼들이란 모질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믿고 싶다.

그 외에 내가 무슨 말을 하리.

  2022. 11. 2. 수요일

머리를 짧게 잘랐다.

염색을 멈춘 후부터 늘 짧게 하였는데, 지난번 대상포진 수포가 이마에 돋는 바람에 좀 미루어졌다.

귀가 나오게 짧게 자르고 거울을 보니, 엄마가 거기 서 있었다.

  2022. 11. 17. 목요일

동네병원에서 독감접종을 했다.

코로나 3차 접종 후 추가접종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구청과 보건소에서 접종 독려문자가 지치게 온다.

치아라, 내 몸땡이를 와 너거가 하라 마라 하노?

고위험군인 건 알겠지만 끊임없는 변이의 탄생 속에서 끊임없이 주사를 맞을 순 없자너.

대신 생애 처음으로 독감접종을 했다.

이른 봄에는 폐렴접종도 해야겠다.

  2022. 12. 24. 토요일

따뜻한 이부자리 속에서 뒹굴거리다가 10시가 넘어서야 일어난다.

어제 늦게 잠들기도 했지만 토요일 아침에는 유난히 마음이 느긋하다.

이것은 백수의 참된 자세가 아니다.

진정한 백수는 요일 따위에 영향받지 않으며, 오직 본인의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줏대 없는 나의 체세포와 전두엽과 내장과 혓바닥은 관성으로 수십 년 된 습관을 따르는 것이다.

토요일 아침은 고로케(촌스러운 일본 발음)가 댕기는 이상한 식욕 덕에 어제 두 개를 미리 사다 두었다.

고로케 하나, 귤 하나,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최강 한파가 이어진다.

어제 빵집 가는 잠깐의 외출에도 눈물이 흐르고 귀가 얼얼하였다.

야호, 겨울답구나야!

나쁘지 않아, 나는 겨울에 태어나 겨울을 사랑하는 겨울아이, 아니 겨울할머니.

그런데 현실은, 추위를 피해 집에 꼭꼭 숨어 있다고 고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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