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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취향저격

by 愛야 2023. 7. 25.

처음 본 넷플릭스 영화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아들 아이디에 숟가락 얹은 공유 프로필이라서, 뭘 보았는지 이력을 조회할 재주가 없다.
처음에는 주로 어워드 수상작에서 골랐는데, 올라온 영화들은 이미 보았거나 안 봐도 본 듯한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고를 영화가 많지 않으니 곧 관심이 멀어져서 한동안 넷플릭스를 잊었었다.
그러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자 딱히 집에서 할 일이 없어 다시 띄엄띄엄 혹은 맹렬히 보기 시작했다.
나를 찾아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사랑이 지나간 자리, 그린북, 내 앞의 生, 와일드 라이프, 가재가 노래하는 곳, 파워 오버 도그, 아메리칸 세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단편영화를 뒤적거리던 어느날, 그동안 선택에서 제외하였던 외국 미니시리즈를 보았다.
미국 범죄영화 "Breaking Bad"였는데, 뜻밖으로 재미있어서 몇 박 몇 일을 몰입하여 다 봐 버렸다.
성가시게 자주 고를 필요도 없이 긴 호흡으로 좌악 볼 수 있는 시리즈물의 덕목을 드높이 칭송하면서.
그리고, "Breaking Bad"의 스핀오프 작품 "Better Call Saul"을 보고, 무심하고 잔혹한 "오자크"도 보았다.
그러면서 깨달은 내 영화취향이 사건수사. 잘 짜인 법정. 추리와 반전. 미스터리 등의 범죄영화라는 것이었다.
법정영화나 수사물을 좋아한다는 건 전부터 알았지만, 큰 사건이 아니면 싱겁다니.... 이런 잔인한 아지매 같으니.
나보다 더 재빠르게 눈치를 챈 것은 넷플릭스였다.
범죄영화 몇 번 보았더니 그 다음부터 온 세상의 스릴러. 폭력범죄영화가 나에게 취향저격이랍시고 펼쳐졌다.
친절한 알고리즘이 추천한 콘텐츠 분위기도 가관이었다.
"우울한, 어두운, 섬뜩한" 등은 고상한 편이고, "점입가경 스릴러"는 어떤 스릴러인지 참 점입가경이었다.
 
알고리즘이란 게 너무 일방적이다.
그들은 나에게 알고리즘의 기능을 이용할래 말래 묻지도 않았다.
사람이 짜장면을 좋아한다고 어찌 짜장면만 먹나, 파스타나 비빔밥도 먹다가 맑은 된장국를 곁들일 수 있단 말이지.
그런데 내가 짜장면 몇 번 시켰기로서니 묻지도 않고 중국집 메뉴판만 들이미는 느낌이었다.
다양한 경험의 가능성을 한정적으로 통제한다고나 할까.
물론, 넓고 넓은 컨텐츠 세상을 다 헤매고 다닐 수 없으니 그 수고로움을 줄여주는 장점은 있다.
그래서 이른바 카테고리라는 게 있지 않나.
대표적인 영화들은 어차피 카테고리 대문을 터억 차지하고 있으니, 목록에 뜨지 않아서 영화를 못 볼 경우는 적다.
위 단편영화 목록에서 보다시피, 나는 감동적인 홈드라마나 우수영화도 어마어마 좋아하는 사람이다.
시리즈 "브리저튼""아웃랜드" 같은 시대극도 보고,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 같은 실화의 영화도 본다.
내 취향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AI가 범주를 단정짓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니면 약 20% 정도만 알고리즘을 이용하든지, 또 아니면 기능활용의 선택을 하게 하든지.
 
아들의 프로필을 슬쩍 클릭해 봤다.(염탐 맞음)
아들에게는 온통 애니메이션 영화가 나의 범죄영화처럼 주어져 있었다.
애니 좋아하는 녀석인지라 얼마 전 "스즈메의 문단속"을 영화관 가서 보았다더니, 이거 뭐 서로 바뀐 것 같다.
알고리즘을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이 들통나니 이쯤 되면 개인정보유출 되겠다.
 
TV 재방채널에서 드라마 "도깨비'를 또 방송하고 있었다.
또 재미있었다.
6년도 더 된 드라마 "도깨비"는 왜 번번이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범죄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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