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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국수

by 愛야 2023. 10. 31.

혹독했던 여름을 지나는 동안 나를 굶어 죽지 않게 했던 건 국수였다.

 

해마다 여름을 유난하게 힘들어하였다.

땀을 남보다 더 흘리면서도 잘 먹어내지를 못하니 몇 배로 더 지쳤다.

뜨뜻한 밥알을 씹는 상상만으로 입맛이 저만치 달아나곤 했다.

그러나 웃기게도 아침에는 뜨거운 커피와 따뜻한 빵을 먹었다.

밥알의 논리대로라면 시원한 아이스커피로 오장육부를 식혀야 마땅한데, 커피는 일 년 내내 뜨거운 커피여야 했다.

모순의 이중인격자여, 결국 그냥 밥이 싫었다는 것뿐이구먼.

 

그럴 때, 세상에는 국수가 있었다.

순결한 흰 국수는 나를 거슬리지 않고 호로록 매끄럽게 목구멍을 넘어갔다.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매콤하게 내 배를 벌떡 일으켜, 씩씩하게 저녁 운동을 나가게 했다.

바로 그 점이 해로운 식사라는 건강상식쯤 나도 안다.

나이 들어 아침 공복혈당이 꽤 높아진 내가 피해야 하는 정제밀가루 식품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치밀하게 반론을 준비해 두었다.

"의사가 그랬어, 뭐든 먹되 양 조절만 하라고, 나는 양이 적으니 괜찮을 거야."

괜찮지 않다 하여도 나는 국수와 이별할 생각이 없었다, 아침의 빵도.

메밀이나 해초. 우무(곤약) 등 여러 건강버전이 있지만, 나는 흰 국수의 정체성을 버릴 수 없다.

 

국수,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죄송하게도 젊은 우리 엄마가 아니고 외숙모이다.

외숙모는 여름 외갓집 우물가에서 뽀얀 국수를 씻어 큰 채반에 가득 담고 있었다.

농사철이라 논에 참을 내가려는 준비였을지도 모른다.

우물가 감나무에서 이파리 몇 올 떨어졌던가, 떫은 감을 담근 소금물 항아리도 곁에 있었던가.

기억 속의 순간은 참으로 청량하였다.

젊은 외숙모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는 꼬맹이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몇 가닥의 국수를 돌돌 말아 입에 아 넣어주었다.

그 시원하고 매끄러운 감촉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국수는 거기부터다.

 

시골 촌국수는 그렇게 하얗지 않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밀을 직접 길러 동네 정미소에서 빻아 거칠게 국수를 뽑으면 거무스름한 국수가 된다 하였다.

엄마의 친구가 촌국수를 뽑았다며 한 박스씩 보내주곤 했는데 나는 검은 국수라 불렀다.

외갓집 국수가 언제나 뽀얗고 깨끗했던 것을 보면, 밀농사는 짓지 않았던 모양이다.

 

멸치육수에 고명은 오이채나 부추나물, 어쩌다 계란지단 김가루, 투박한 양념장, 그게 다인 촌국수.

더구나 외숙모의 웃음까지 수십 년이 지나도 이렇듯 또렷하니 어찌 국수를 버릴 것인가.

여름이 다 갔는데도 국수 떨어질세라 잽싸게 사 온 나를 위한 변명이라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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