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날

밥 짓다

by 愛야 2024. 1. 1.

아침밥을 지었다.

아침에는 빵과 과일로 충분하기 때문에 밥을 지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새해 첫날, 밥의 향기로 집을 가득 채우고 싶었다.

쿠쿠여사의 진행에 따라 칙칙폭폭 밥이 달려가는 동안, 나는 새해 첫 커피를 느긋하게 마셨다.

 

밥이 똑 떨어진 것은 사실 어제였다.

어제 아침 역시 평소처럼 빵을 먹었으니 말하자면 저녁밥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 해의 마지막 저녁에 굳이 밥을 지어 이듬해로 묵은밥을 넘기기는 어쩐지 싫었다.

한번에 5인분 정도의 양을 지어서 소분보관하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날짜가 무슨 상관이냐며 똑같은 하루일 뿐이라고 했을 것이다.

늙는 게야, 이런 것이 늙는 증거지.

늙고 있는 나는 밥 대신 라면으로 12월 31일 한해의 마지막 저녁을 해결하였다.

 

굳세게 하루 버텨 드디어 오늘 새해 아침, 따뜻하고 포근한 새 밥을 지었다.

아, 순서가 거꾸로네, 커피부터 먼저 마시고 밥을 나중에 먹다니.

아무렴 어때, 때마침 햇살도 퍼져 집이 더 따뜻하니 된 거지.

 

뉴스에서, 해운대에선 해가 뜬 지 30분이나 지나 구름 속에서 나왔다 전한다.

그럴 경우 대부분 인파들은 실망스럽게 혀를 차며 흩어지고, 남아있던 몇몇은 뒤늦게 환호한다.

이미 높게 떠 버린 해는 더 이상 기다림의 대상이 아닌 것일까.

그렇더라도, 다시 받아 든 한 해, 소중하고 알뜰하게 살아볼 일이다.

'그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여, 때가 되었습니까?  (46) 2024.06.17
가지가지  (39) 2024.04.12
국수  (46) 2023.10.31
가을산 같은  (0) 2023.08.30
취향저격  (40) 2023.07.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