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 씹는 너를 보니>
ㅡ OOO
껌 씹는 너를 보니
내가 다 평화롭다.
입을 될 수 있으면
딱딱이 소리를 낼 수 있게
바싹 오무리어 상하로
반복하는 너의 입은 어찌 사람이 밥을 먹고
삶을 위해 살기 위한
입이더냐.
다만 그 입은 평화를 위하여
평화를 씹고 씹어
어느 봄날 눈 녹던 아침
희디흰 청결로 남을 것이나
이미 단물은 다 사라져
우리의 스물 아홉과 비슷할 게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물론 이 멋진 詩는 나의 것이 아니다.
저 위의 ㅇㅇㅇ는 친구의 이름인데, 미처 그녀의 허락을 얻지 못한 관계상 그리 적어두었다.
내 친구는 시인이다.
남편도 시인이다.
나는 시인의 친구이다.
시인들의 사랑도 닭살스럽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다.
그들이 결혼할 때 하객들에게 선물 대신 자신들의 시를 엮은 2인 詩集을 비매품으로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시집도 받고 맛있는 점심도 얻어 먹었다.
결혼기념일이 머잖을 친구 생각이 나서 책장을 살피니 이름도 가물거리는 저 시집이 그리움처럼 꽂혀 있다.
누렇게 변한 친구의 詩를 펄럭펄럭 세월처럼 넘긴다.
내 둔한 감성탓으로, 당시에는 몰랐던 시인의 눈이 이제야 읽힌다.
그녀는 이십 대에 알았던 사랑과 인생을 나는 마흔을 훨씬 넘겨 지금에야 알겠노라 말한다.
이리하면 나는 여적지 청춘이란 것인가, 아니면 미성숙이란 것인가.
스물 아홉.
괴롭기엔 아까운 눈부신 나이.
하지만 스물 아홉 때는 스물 아홉의 고통이 있었다.
그러니 詩가 씌여졌을 게다.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한번쯤 돌아가고 싶은 시간임을 어찌 다 말하리.
친구년이 흘러간 옛시를 올렸다고 혼내지는 않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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