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월드컵때 아들에게 빨간 티셔츠를 사 입혔지요.
여름 내내 잘 입더군요.
그 이후 빨간 색이 제일 좋아하는 색이 되었다네요.
튀고 싶은 걸까요?
머스마가 빨간 색을 좋아해 봤자 한계가 있고, 내가 사 입히는 옷도 온통 감색, 회색, 누르팅팅한 색(아들 표현이고 어디까지나 고상한 베이지)입니다.
어릴 땐 핑크색도 예쁘게 입혔는데 머리 굵어지니 핑크에는 반항하네요.
월드컵으로 세상이 온통 빨간 물결, 심지어 반찬 가게 할매마저 빨간 두건에 빨간 티셔츠를 입고 빨간 김치를 팔고 있어도 아들에게 사 줄 생각을 안 했어요. 지
가 대학생이거나 아니면 어리기라도 하면 월드컵 끝나고도 입겠지만 입지 않을 게 뻔하잖아요.
국민의 유니폼이다시피 한 과도한 패션에 질리기도 했었고 아들도 티셔츠 말을 안 해서 관심 없는 줄 알았지요.
아이와 어른 중간에 있는 아들의 옷 사는게 쉽지 않아요.
삐적 마른 몸피는 어른 옷에 못 미치고, 나이와 키는 아동복을 거절하고 그래요.
나는 아이구, 어서 커라. 그 수밖에 없다 하지요.
그래서 어지간하면 대충 지금 입는 옷으로 버티면서 과도기를 넘어가려고 해요.
그러다 두 번째 경기할 때 아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빨간 티 사 줄까 했더니 그러든지 하더라구요.
어라? 거절을 안 한다?
빨간 티 사주면 꼭 입어야 한다고 다짐을 받은 후 퇴근하며 한 장을 샀네요.
앞가슴팍 무늬와 등판은 요란벅쩍한데 목이 좀 답답해 보였어요.
옷 파는 대학생이 입고 있는 옷을 보니 파는 제품이랑 모양이 좀 달라요.
나도 총각이 입고 있는 디자인으로 줘요, 했더니 아, 이건 이것을 이렇게 잘라서 만든 겁니다, 그러네요.
그래서 집으로 와 나도 그가 갈쳐준 대로 했지요.
처음 목부분이 이랬습니다.
보통 티셔츠처럼요.
가위로 목둘레 벤 후 쫀쫀한 부분을 사정없이 우두둑 뜯습니다.
넝마 패션 되었지요?
아들에게 주니 좋다네요.
일부러 좀 너덜거리게 만들었는데 오히려 맘에 들어 하는 눈치였어요.
헐, 근데 정말 딱 한 번 입고는 끝이예요.
4년 후 이 티셔츠 또 입을 수 있을까요?
녀석이 묻더군요.
옴마, 다음 월드컵은 내가 대학생일 때가?
응, 대학생 아니면 재수생.
재탄생까지 한 아까븐 티셔츠... 4년간 보관 잘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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