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이득이 되는 차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녹차, 인삼차, 대추차, 유자차, 모과차, 자스민차, 허브차 등등 마셔는 보았지만 몸을 이롭게 하는 것은 茶라기보다 藥처럼 느껴진다.
실제로도 그렇다. 목이 아프면 모과차를 찾고 감기 들면 따끈한 유자차를 마시지 않는가. 인삼차는 원기를 회복시키고 허브차는 긴장을 풀어 준단다. 그러니 약이 아니고 무어냐. 커피 몸에 안 좋다고 절대로 안 마시고 몸에 좋은 차만 고집하는 사람과는 별로 놀고 싶지 않았다.
"아, 커피 마시고 싶어..."하는 말은 몸 아닌 마음이 시키는 것이다. 난 그리 알아 듣는다. 그래서 즉시 그 마음에 응답한다. 아침 일어나자마자일 경우도 있고 잠자기 직전일 경우도 있다. 몸은 간혹 싫어하기도 한다. 속쓰림 혹은 진땀, 이뇨작용 등인데 슬쩍 무시해 버리면 곧 회복되는 놀라운 몸이다.
그러고 보니, 청탁불문(淸濁不問 ) 하시불문 (何時不問)이라는 말이 되었는데 이는 세상 酒黨들이 받들어 섬긴다는 三不問중 두 가지이다. 평생 커피 마시다 보면 마지막 일불문인 생사불문(生死不問)도 남의 일일 것인가. 그렇다면 酒黨들과 커피꾼들은 한통속이 되는 셈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를 향하고 있다.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커피 타령이 아니었다. 방향을 Uㅡ 턴 한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잘 마시는 차는 한차다. 앞서, 약처럼 보이는 차는 안 좋아한다 했는데 약처럼 보이기로 친다면 한차를 따를 게 어디 있는가. 한 입으로 두 말, 배반 때리는 기분이긴 하다. 다만 한차는 최근에 생긴 입맛이라꼬 변명한다. ㅎㅎ
작년 겨울인가, 한 지인은 방문한 나에게 커피 아닌 한차를 내 왔다. 감기 든 나를 배려해 그녀가 내 온 차는 뜨겁고 검고 잣, 대추가 동동 떠 있었으며 쌉싸름한 내음이 싫지 않았다. 물론 가정표 한차는 아니고 티백에 든 말린 가루를 물에 부어 먹는 인스턴트 한차였지만 대추 잣 등 내용도 풍성하였고 끝맛은 약간 생강맛이 나 개운했다. 한약 같던 한차도 맛있다는 걸 안 것이다. 참 내, 쌍화차 같은 한차는 역전 다방이나 복덕방에서 김사장과 마담 언니들만 마시는 줄 알았다.
내가 맛있게 마시는 걸 본 그녀가 한차를 한 박스 선물하였다. 희안한 것은 한차를 마시는 동안 커피를 거의 안 마셨다는 것이다. 일부러 참은 것이 아니라 커피가 댕기지 않았고 오히려 아침에 일어나면 한차를 마시고 싶어졌다. 한차에도 중독성이 있었을까? 나라는 인간이 약한 인간인가?
선물 받은 100포의 한차를 다 먹은 후에 맛들인 나는 다시 한차를 사려고 했다. 가만, 그 한차 이름이 뭐였지? 어느 회사 제품이였더라?.... 음, 알면 내가 아니지. 일단 마트에 가 보면 떠오를 거야. 마트엔 비슷비슷한 이름의 수많은 한차가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그 중 가장 닮은 그림과 이름을 사 왔다. 물론 확신이 없었으므로 실패를 대비해 최소 포장단위를 선택한 센스도 발휘했다.(흐이구, 100포 다 먹도록 이름도 모르는 주제에 센스는 무슨...)
한차 구입에 세 번이나 실패했다는 말은 참으로 하기 싫다. 너무 달아 비위에 역하든지 정말 약처럼 텁텁하든지 했다. 맑으면서도 향이 있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여기서, 그럼 선물 했던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하는 의문이 생긴다.
난 너무 염치가 바른 모양이다. 차를 다 먹고 "그 한차 이름과 회사가 뭐예요? 맛잇어서 또 사려고 하는데 뭔지 몰라서...." 한다면 그녀가 옆구리 찌르는 걸로 오해할까 싶어서 그리 물어보질 않았다. "어머 그래요? 내가 손쉽게 더 사드리지요, 뭐" 이러면 사람 입장이 난처해지니 말이다. 그건 염치 바른 게 아니라 소심한 것이라 해도 난 결코 묻지 않았을 것이다. 맛있는 한차에 대한 아쉬움은 곧 사라져 갔다. 역시 커피 맛이 최고여.
어제 명절이라고 누군가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열어 보니 한차다. 반가움의 한편으론 덜컥 염려가 된다. 한차는 정말 입에 맞지 않으면 잘 못먹겠어서다. 더구나 큰 박스니 안 맞으면 준 사람에게 얼마나 미안한가. 하지만 천만다행, 옛날의 그 맛처럼 입에 맞았다.

한차와 한과입니다. 추석 잘 지내세요.
오늘은 늘 하던대로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아직 한 잔의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몸살기운 때문에 열이 나고 근육이 아프다. 커피 대신 한차는 두 잔이나 마셨으니, 이게 차 아니고 분명 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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