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일을 만들지 않은 금요일이다.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심심하진 않았다.
동료는 아침 일찍부터 집을 떠나 세상으로 나와야지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니면서 돈 벌어야지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뭐 해, 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녀는 그러나 돈을 번 것 같지는 않았다. 단지 부지런할 뿐이었다. 나는 집에 틀어박혀 있고 싶다. 나의 달팽이 기질에 순종하고 싶다. 이는 곧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전제가 주는 간절함이다. 슬픈 반작용이다.
집에 틀어박혀 산다는 것은 '돈 버는 일'을 그만한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해거름을 물끄러미 보다가, 기다렸다는 듯 바람이라도 불면 어딘가로 하염없이 떠나가고 싶어진다. 틀어박혀 산다고 해서 머물겠다는 뜻은 아닌 모양이다. 발목을 붙드는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것이다.
아침, 첫 커피를 마신다. 한차를 마신다. 다시 커피를 마신다. 다시 한차를 마신다. 녹차를 마신다. 다시 한차를 마신다. 밤 11시 40분 마지막 커피를 마신다.
갇힌 짐승처럼 뒤척이는 하루 내내 유난히 차를 마신다. 정서적인 허전함이다. 끊임없이 내 속으로 뜨거운 무엇을 흘려보내 잠 재운다. 뜨거운 찻잔을 들고 있는 순간은 평화롭다. 안온하다. 하지만 잔을 뒤집어 마지막 한 모금을 확인하자 이유없는 서성임이 찾아온다. 두 발이 허공을 밟고 등짝도 방바닥을 거부한다. 마치 비가 오려는 저기압의 밤처럼 신경줄은 잠들지 않는다. 차를 너무 마셨다.
어느 이웃이 릴케의 사랑시를 들려주었다. 릴케는,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에 익숙하라고 한다. 둘이 붙어 걸으려 말고 오로지 혼자 지내기에 더 익숙하란다. 참으로 맞다고 고개를 주억인다. 외로움을 즐기며 그대와 나 사이의 틈이 있어야 사랑이 들어온다. 스스로의 모습은 떨어져야 보인다.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면 서로를 사랑할 거울이 없다. 질식할 사랑은 수명이 짧은 법이다.
혼자 지내기라면 자신 있다. 너무 자신 있어 탈이다. 그렇다면 이제 사랑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면 되는 셈인가. 그러나 어쩌나. 혼자에 익숙한 사랑은 사랑이 아닌 듯하다. 릴케에게 공감하나 찬성은 물론 실천은 더욱 하기 싫다. 쓸쓸해서 싫다.
사람이 사람을 가장 외롭게 만든다. 외로움의 가해자는 사랑하는 사람이기가 쉽다. 이제 그 누구도 외롭게 만들고 싶지 않은데, 불행히도 나는 혼자에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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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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