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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작년과 같은 하루

by 愛야 2006. 10. 31.
유행가예찬 | 하루
 
2005.10.31.
 

내년 달력이 내 손에 들어 왔다.

올해 것도 아직 두 장이나 남았는데,벌써 나온 달력이 원망스럽다.

세월을 미리 맞이할 나이는 이제 아니다.

 

마을버스를 탄다.

창밖의 이른 어둠이 내 모습을 품듯이 오늘 두 번이나  들은 노래가 나를 반긴다.

시월의 마지막밤을 기억하느냐고 유행가가 묻는다.

무심한 나는 제목마저 기억하지 못 한다.

일 년 열 두 달, 첫 날과 닿아 있지 않은 마지막날이 어디 있으랴만

저 노래는 부질없이 그것을 묻는다.

젊었던 가수는 어느덧 중년의 눈빛을 하고 있건만,노래 속의 앳된 울림은 세월을 모르겠다 한다.

 

제야의 밤 이후로 거론되는 마지막 밤은 늘 시월이다.

해마다 오늘이 되면 ,라디오에서 어김없이 흘러나온 이 노래가 일기가 된다.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밤임을 누구도 잊지 못 한다.

유행가의 힘이다.

 

나는 유행가를 좋아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빠름과 느림을 막론하고 옛것과 지금을 막론한다.

그러나  가사에 집착한다.

유행가에 나를 대입한다.... 좋다.

나의 마음과 추억을 공명시키지 못 하는 노래는 내 유행가가 아니다.

나의 주름지고 메마른 눈가가 가늘게 좁혀지고, 축축한 기억에 눈 슴벅거리게 하는 것.

아니면, 나도 모른 발장단과 엉덩이를 실룩거리게 하는 것,

오랜 친구의 친구이고 싶게 하는 것,

나와 같은  인생도 저리 많으니 내 생이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다고 훌훌 잊어버리게 하는 것,

그것이 없다면 나의 유행가가 아니다.

그러므로 멍청한 oh, my baby나  랄랄라는 나에게서 빛을 잃는다.

노래가 아니라 소리일 뿐이다. 생명이 없는 원시단계의 음운.

 

그러니 조용필이 좋다. 김현식과 정태춘도 좋다. 이문세도 허락한다.

이름 모를 가수일지언정, 가슴의 울림이 있으면 받아들인다.

정작, 시월의 마지막임을 해마다 일깨우는 가수는 좋아하지 않는다.

세월을 물어서? 나는 늘 마지막이므로?  떨려오지 않는 나의 심장에게 물어 볼 일이다.

 

다가오고야 말 내일은 11월의 첫날이다.

싸늘한 11월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나의 겨울로 인도하는 문턱.

 

마을버스에서 내린다.

노래도 끝난다.

 

 

우습게도 작년의 10월 31일과 하루 스케줄이 비슷하다.

작년에 마을버스를 타고 방문했던 지인의 집을 오늘 가기로 했으니 말이다.

오늘도 저 마을버스엔 이 용이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시월의 마지막 바믈~"하며 노래하고 있을라나?

 

창에 머리를 박고 노래를, 이십 년도 더 된 노래를 들었던 내 모습도 일 년 사이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세월이 가면 변하리라는 것은 한낱 꿈일까.

세월이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 갈 것을 꿈꾼다는 것은 그저 꿈일까.

 

내년의 오늘도 마찬가지다. 

알 수 없는 미래를 핑계로 변신을 꿈꾸지만 뾰족한 사항은 없을 것이다.

자고, 먹고, 싸고, 울고, 웃고, 죽고, 뭐 대단한 사건 있나?

죽고는 좀 대단한가?

 

내일은 추워졌으면 좋겠다.

늦가을에 걸맞는 날씨가 되어야지 않나.

10월 마지막 날의 소망은 그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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