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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모기에게 고함

by 愛야 2006. 11. 6.

창밖의 바람소리가 윙윙거리는 게 들리느냐?

바람이라고 다 같은 바람이 아니니라.

너희가 득세하던 뜨거운 여름철의 신나는 바람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지금은 11월이니라.

한 차례 비가 지나고 나니 확연히 기후가 달라졌지 않느냐?

아무리 따뜻한 남녘이기로 아직도 너희는 떠날 줄을 모르다니

뭐 그리 피에 미련이 많으냐?

 

어젯밤 내 귀에 들려오던 너희들의 날갯짓.

반 병의 이슬이 덕에 곤히 자던 내가 그만 깨지 않았니.

너희들의 저공비행음에 예민한 이 몸이 어찌 화라락 일어나지 않을 수 있더냐.

짜증이 제대로 일더구나.

뭐 무용지물 되어 버린 알콜이 아깝다기보다,

에프킬라가 다 떨어져 간다기보다,

달아나 버린 잠이 더 달콤하다기보다,

수월히 긁을 수 있는 곳을 굳이 두고 꼭 발가락이나 손바닥 혹은 등때기를 공격하더란 말이지.

 

분노한 난 화염방사기처럼 에프킬라를 꼬나들고 X, Z, W자 등 알 수 없는 추상화를 허공에 뿌렸지.

허긴 너희들도 기운이 예전만 못한 것이, 후두둑 맥없이 바닥에 실체를 드러내었지.

애도하며 속으론 통쾌무비, 휴지로 너희 몸을 가만히 누르자 빠알간 피 방울방울 선연도 하여라.

AB형 피가 명명백백하여라.

 

하루동안 열심히 만들어 둔 내 피를  두어 마리, 아니, 저기도 쓰러져 있네.

어허, 어쩐지 오늘 아침에 팽 어지럽더구나.

빈혈 증상인 게야.

 

떠나거라, 내일은 입동이란다.

시류에 따라 처서를 무시한 너희들을 용서하마.

입동의 냉기에도 태연히 주둥이 꽂으려 선회하는 너희를 목격하는 것이 두려운 마음이니라.

세상이 왜 예전 세상이 아니란 말인지.

왜 가을이 이리 덥고 만년설은 녹고 단풍은 실종되는지, 정녕 지구는 돌고 돈 것이라.

 

다시는 마지막이라 뇌면서 모기약 사러 가지 않을 거다.

부디 내년에 만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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