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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장 속의 영웅ㅡ 솔로이스트

by 愛야 2009. 12. 1.

 

 

 
<솔로이스트>. 평일 오전 11시 55분 상영. 10분 전 들어가니 객석은 터엉 비었다. 대학가의 CGV이니 이 시간에는 모두 수업에 매진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에 코 박고 있으리라. 그래도 너무한다야, <2012년>이나 <백야행> 상영하는 옆 관에는 쌍쌍이 들어가지 않았냐
 
나는 뒤에서 두 번째 J7번. 텅 빈 객석에서 지정석의 의미는 없지만 내 몫의 좌석을 굳이 찾는다. 이어 한 여자가 스낵과 음료를 들고 씩씩한 걸음으로 들어온다. 휴우, 다행이다. 덕택에 혼자 영화보는 무서움을 벗는다. 내 또래로 보이는 반가운 그녀, 저만치 앞에 앉는다. 곧 그녀의 발이 앞좌석 등받이에 척 올려진다. 맨발이다. 희다. 신발이라도 벗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온 객석이 다 비었어도 해선 안 될 일이라 생각한다. 다음 시간의 누군가가 앉아 머리를 기댈 자리니까. 그러고 보니 난 다리를 올리긴커녕 가방마저 소심하게 끌어안고 있다. 허락받은 딱 일 인분의 공간을 사용 중이다. 쯧, 융통성이라뉘, 한심하긴. 나는 옆 의자를 내리고 당당히 가방을 보관시킨다. 두 명의 관객을 위해 영화가 시작된다. 어둠 속에 그녀의 흰 맨발이 내내 떠 있다.
 

그는 왜 정신분열을 일으켰나, 모르겠다. 미스테리나 추리영화가 아니니까 과거를 추적하고 파헤치는 것에 중점을 두진 않는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일 수도 있고 엄마의 분주함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자폐일 수도 있고 지나친 예민함이거나 그 모든 것의 합체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토록 간절했던 음악인생의 첫길목에서 정신분열증이 그의 발목을 잡아 팽개쳤다는 것이다. 그는 카트에 전재산을 싣고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가 되었다.

 

선물받은 첼로를 길바닥에서 연주하는 그의 몰입. 몰입으로 솟는 눈물. 그의 음악, 그것이 그의 인생이다. 그는 길바닥에서 연주하길 좋아한다. 소음이 있어야 첼로의 소리를 향해 더욱 귀기울이고 더 들린단다. 역설적 배경 속에서 main이 도드라지듯, 의미를 알 것도 같다. 하지만 사람들과 언론은 그를 '도와' 안정된 공간으로 데려다 놓길 바란다. 이른바 복지정책.

 

치료를 거부하는 그의 뜻을 존중하는 일은 일견 방치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광기 속에서 그가 불행하란 법은 없다. 뒤죽박죽인 그의 머릿속을 정리하여 갖춘 모양새로 연주한들 괴로움이란 어디에서나 새롭게 생성되는 것, 길은 길로 이어진다. 그에게 무얼 원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두 줄만 남은 바이얼린의 현을 다 갖추는 게 소원이라 했다. 드디어 그에겐 첼로가 마련되었다. 자유로운 노숙자 관객들도 몇몇 생겼다. 그로서는 완벽하게 다 갖추어진 것이다. 그를 행복한 음악의 세계로 데려다 놓은 것, 딱 거기까지만. 대중의 식탁 앞까지 데려올 필요는 없다. 내 기준으로 그에게 필요한 것을 다 퍼주려고 하는 것만이 그를 위하는 것일까. 그 사실을 기자가 뒤늦게나마 안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를 우리식으로 만들고 흐뭇할 사람은 우리뿐이라는 것을.

 

텅 빈 객석에 <Eroica>가 울린다. 울려서 더 울린다. 소름이 오소소 돋게 좋구나. 역시 베토벤. 베토벤을 향하는 그에게 바하도 해 봐요, 첼로를 레슨해 주는 음악가가 권한다. 무반주 첼로의 둔중한 울림. 심장 저 어딘가가 아파오는 낮은 현의 진동. 현을 활로 켠 최초의 누군가는 분명 저 검은 천재처럼 두 눈을 감으며 울었으리라.

 

뜬금없는 그의 앞가르마가 불협화음의 분장이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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