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흐리고 하늘이 낮다.
이런 을씨년스러운 날씨에는 눈이 제격이련만, 절대 눈이 내릴 리 없는 이 도시.
틀어 둔 T.V.에는 어제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코로나19와 역겨운 정치싸움이 가득하다.
날씨도 이리 꿀꿀한데 고만들 쫌 해!
속으로 버럭 소리를 지른 후 나는 뉴스를 떠나 오랜만에 넷플릭스로 들어간다.
그사이 새로운 컨텐츠가 제법 올라와 있다.
오오, 2020産 "자기 앞의 生".
더구나 소피아 로렌이 출연한다니 놀라웠다.
아마도 내 무의식에는 그 옛날 여배우가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마담 로사 역의 소피아 로렌을 보고 싶었다.
감독이 소피아 로렌의 아들이라지만 그렇다해도 출연 결심은 참으로 대단한 용기가 아닌가.
86세의 대배우, 주름지고 늘어진 피부, 여전히 긴 머리, 여전히 사나운 눈코입, 노인다운 몸매.
아역 모모의 연기도 출중했지만 그건 될성부른 나무에 대한 칭송이고
늙은 그녀의 숨김없는 모습은 또다른 관점에서 가슴이 아플 정도로 좋았다.
강렬한 이목구비 때문에 젊은 시절의 연기는 종종 과해 보이곤 했다.
그 강한 용모는 나이 들었다고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덕택에 인자함과는 거리가 먼 파란만장 할머니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기가 이제 편안했다.
병원에서 죽음을 맞게 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으나 갑작스럽게 로사가 입원하자 모모가 말한다.
"자연이 이롭다는 건 거짓말이다. 자연은 제멋대로다. 때로는 꽃과 동물이지만, 때로는 사람이 늙어 병원에 갇히기도 한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로사를 병원에서 몰래 데리고 나온 모모가 밤새도록 휠체어를 밀며 집으로 가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모모가 지쳐 비틀거려도 정작 휠체어의 그녀는 무심하였다.
아침이 밝아올 때 다다른 어느 포구에서 문득 그녀는 풍경을 보며 중얼거렸다.(위 사진)
"너무 평화롭구나..."
깊고 절제된 중얼거림 끝에 맞이하는 죽음의 과정.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고통과 이별도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
#2
오후에 들어서며 구름이 벗겨졌다.
하지만 어쩐지 다른 날보다 일찍 어두워지는 것 같아서 저녁을 이르게 먹고 운동을 나간다.
집 앞 원룸 건물을 지난다.
노란 길고양이가 원룸 주민처럼 천천히 건물 현관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러자 센서등이 화들짝 놀라 불을 반짝 켠다.
그 장면이 유머러스해서 나는 큭 웃는다.
저넘은 지가 불 밝힌 줄 모르겠지?
그런 것이기를.
자신이 몰라도 누군가에게 웃음을, 불을 반짝 밝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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