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한 블럭 앞 골목에는 오래된 목욕탕 건물이 있다, 아니 있었다.
헬스까지 구색을 나름 갖춘 동네 사우나였다.
얼마 전 그 건물을 허물었는데, 긴 코로나 시대에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그리고 굴뚝만 남았다.
내가 본 굴뚝 중에 가장 높은 굴뚝이었다.
아주 오래 전 지어 올렸는지, 요즘 도시에 그렇게 높고 낡은 굴뚝은 쉽지 않았다.
거실에서 정통으로 바로 보이는 그 거대한 굴뚝은 내 몫의 하늘을 반으로 분할하였다.
가끔 구름이나 달을 찍으려고 해도 굴뚝의 존재는 어느 각도에서나 피할 수 없었다.
차라리 굴뚝을 살려서 마치 빈티지를 의도한 것처럼 찍어야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굴뚝은 어디까지나 부속품일 뿐, 이제 목욕탕이 사라졌으니 굴뚝 너도 곧 끝이얏!
나는 저 높은 굴뚝을 어떻게 허물지 너무 궁금하였다.
엊그제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공사 소리가 요란하였다.
두 대의 크레인이 굴뚝을 둘러쌌고, 그중 한 대에는 사람 둘이 탄 사각 작업대가 달려있었다.
곧 굴뚝의 꼭대기 마디 시멘트를 절단하는 굉음이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높디높은 허공에서 시멘트 분진이 마구 흩어졌다.
인근 주차장에선 큰 비닐막을 차들에게 씌웠고, 옆집에선 옥상텃밭 위로 비닐을 펼쳤다.
굴뚝 꼭대기를 한 크레인이 움켜잡고 있다가 절단이 되면 들어 올려 땅으로 내릴 모양이다.
그러니까, 사람 탄 크레인은 절단을, 또 다른 크레인은 운반을 하는 것이다.
한참을 내다보던 나는 방으로 들어와 외출 차비를 하였다.
다시 거실로 나갔을 때 어느새 굴뚝 첫마디가 사라지고 없었다.
크레인이 굴뚝 조각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다.
지켜보고 싶은 마음을 접고 나는 외출을 해야 했다.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굴뚝은 크레인을 필요로 하는 거의 마지막 마디만 남아있었다.
땅과 가까워지게 되면 그냥 두드려 부수면 될 것이다.
나는 흥미를 잃고 방에서 티비를 보았다.
그리하여 얼마 후 굴뚝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가끔, 지나가던 달이 굴뚝에 그림처럼 걸려있곤 했다.
보름달 혹은 초승달일 때 그 장면은 더욱 극적으로 보였다.
또 가끔은, 동네 까마귀들이 굴뚝 피뢰침 옆에 앉아 큰 목청으로 떠들기도 했다.
작년 여름 태풍 때는 높고 좁은 굴뚝이 무너질까 두려웠었다.
굴뚝이 떠나자 어제 아침부터 초록 먼 산이 분할되지 않고 보인다.
그런데 시야도 마음도 예상만큼 시원하지 않음은 왜일까.
아주 오래된, 따뜻한 세상의 증거 같던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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