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날

휴지가 물어다 준

by 愛야 2021. 8. 29.

나에게 8월은 해마다 고난의 달이었다.

올해도 예외는 없었다.

일상 중의 사고들이 몇 가지 일어났고, 땀만으로도 죽을 지경인 여름을 정말 힘들게 보냈다. (아직 다 보내진 않았네)

앞자리가 바뀌었던 몸무게가 아깝게 다시 원위치로 내려왔지만, 곧 가을이다.

들판이 익어가고 있고, 식욕이야 언제든 대기 중이니까.

 

태풍에 이어 질기고 격한 물폭탄 때문에 며칠 동안 세탁을 하지 못했다.

엊그제 금요일 밀린 옷가지 몇을 돌렸다.

반가운 해가 쨍한 베란다에 널려고 보니, 검은 바지에 눈이 하얗게 내려있다.

이기 머꼬, 방금 빨았...는데?

아.... 바지 호주머니에 휴지 두 장을 넣었던 기억이 난다.

얇은 여름용 천이라 호주머니 검사를 겉에서 만져보며 확인했던 것이 사단이었다.

부드러운 휴지 두 장의 부피감을 만져서야 알 도리가 없었다.

쉽게 갈려다 더 귀찮게 뒤처리를 하였다.

 

그래서 어제는 일일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검사하였다.

앗, 지오다노 반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오.천.원이 나오지 않는가.

언젠가 산책 가면서 혹시 필요할까 봐 넣어두곤 그 바지를 계속 입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은 역시 어제의 낭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아니면 자칫 오천 원도 깨끗이 바래도록 세탁할 뻔했지 않나.

물론 지폐는 워낙 질겨서 휴지처럼 산산히 산화하지 않지만.

 

남 바지에서 주운 것도 아닌, 내 옷에서 내 돈 찾았는데 그게 이리 기쁠 일인가.

하지만 훗날의 기쁨을 배가시키기 위해 오만 원을 숨겨봐야겠다.

 

 

 

 

'그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주머니  (0) 2021.10.11
그녀  (0) 2021.09.12
굴뚝 있던 하늘  (0) 2021.05.31
체중계 위에서  (0) 2021.03.18
잔소리  (0) 2021.02.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