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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물주머니

by 愛야 2021. 10. 11.

7월 어느 토요일 아침이었나, 다리를 포개고 비스듬히 벽에 기대앉은 내 눈에 오른쪽 복숭아뼈가 들어왔다. 이상하게 불룩하고 부풀어 있었다. 지난밤 거대한 모기가 문 것일까. 피부 아래 메추리알 하나 정도 들어있는 듯 도드라졌다. 부푼 부분을 손으로 누르면 말랑거리며 움직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려움이나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지방종, 뭐 이런 건가. 하지만 하루 밤만에?

 

몹시 걱정되었으나 통증이 없었다. 아파야 병원을 갈 텐데, 병원에 간다면 어떤 병원을 가나. 정형외과나 일반외과? 혹은 피부과? 나는 가라앉기를 기대하며 기다렸다. 수시로 나의 오른쪽 복숭아뼈를 만지고 들여다보았다. 조금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았다. 왼쪽과 오른쪽은 짝짝이 발목이 되었다.

 

"복숭아뼈 근처 아래에 물주머니가 있어요, 그게 부푼 겁니다."

9월 초에 만난 정형외과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별 것 아니라고 말했다. 여름 내내 복숭아뼈는 조금 가라앉았다가 부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통증이 있거나 아주 커지지 않는 한 그냥 둬도 됩니다."

의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복숭아뼈 아래 물주머니는 왜 이제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일까. 의사에게 병 취급도 받지 못하면서.

 

한때는 몸뚱이 세포마다 물주머니가 달려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맑은 날은 맑아서, 흐린 날은 흐려서 물주머니는 눈과 가슴에서 터졌다. 시도 때도 없고 장소도 아랑곳없이, 심지어 잠 속에서조차 터졌다.

오, 그랬다. 그래서 걸었다. 누추하고 마른 육신을 끌며 햇빛 내리쬐는 7번 국도를 걸은 적도 있다. 온몸의 수분을 땀구멍으로 다 내버리려는 작정이었는지 모른다. 가슴뼈 근처를 손바닥으로 꽉 누른 채 어두워진 수목원 나무 사이를 걷기도 했다. 왜냐하면 글자 그대로 '가슴이 아파서'였으니까. 나는 그 표현이 실용문장인 줄 비로소 알았다.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며 슬픔과 분노와 수분은 증발하였다. 이젠 버석거리는 몸과 마음으로 노화를 염려하게 되었다. 최소 물 1리터 이상은 먹어야 해, 수분이 너무 부족해, 심지어 눈물도 나오지 않잖아, 이런 처음과 끝이 다른 인간 같으니라고. 나는 세포마다에서 터졌던 물주머니를 잊은 지 오래인 것이다, 복숭아뼈가 부풀기 전에는.

 

오늘도 복숭아뼈 물주머니를 더듬으며 아침을 맞았다. 밤사이 줄어들기를 희망했으나 그저 그만하다. 잊고 있으면 어느 날 거짓말처럼 증발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잊어져야 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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