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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까불다가 죽음

by 愛야 2021. 12. 1.

12월 첫날 아침, 식탁 옆 벽에 가만히 붙어있는 너를 발견했다.
배가 통통하게 부른 너는 고요히 휴식 중이었다.
흰 벽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나는 성급한 타격 대신 휴지를 몇 겹 감아쥐었다.
그리고 조용히 너를 눌렀다.
곧 휴지를 펼쳐 너에게서 회수한 나의 선명한 AB형을 확인하였다, 흡족하다.
너는 지난밤의 그 모기가 틀림없다.
이로써, 이 집에서의 유일한 동거자마저( 者 아닌데... 부를 말이 안 떠오름) 나는 골로 보내버렸다.
 
거울을 보니 목덜미에 세 방의 빨간 점이 한데 몰려 있다.
정확히 경동맥의 위치에 날카로운 빨대를 꽂은 것을 보면 고수였음에 분명하다.
하기는, 고작 내 피 한 방울을 너에게 적선하여 동거를 이어가는 것도 의미 있다.
늙어서 그런지 요즘은 물린 자국이 썩 가렵지도 않고 그저 빨간 점처럼 그러니까.
피 한 방울쯤 아깝지도 않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너의 비행음이다.
막 잠들려는 찰나 혹은 단잠의 새벽에 왜 귓가에 와서 굳이 나를 깨우는가.
말없이 한 방울의 식량을 훔쳤으면 좋았을 텐데, 너는 귓바퀴를 맴돌며 존재를 뽐내지 말았어야 했다.
증오심으로 분연히 일어나 오밤중에 모기약을 안개처럼 뿌리거나, 집을 수색하다 보면 잠은 달아났다.
반드시 너를 쥑이리라!
 
마지막 모기를 처단한 12월 첫날, 하늘은 맑고 깨끗하였다.
이틀 동안 현관문을 열지 않았으니 새로운 유입은 없을 터, 오늘 밤에는 그 무엇도 나를 깨우지 않을 것이다.
모기든 상념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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