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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녀

by 愛야 2021. 9. 12.

그녀는 이른 아침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침 6시, 하늘은 이미 밝았지만 세상은 덜 깬 시간이었다.

습관대로 창을 열기 위해 베란다로 나갔을 때, 빌라 담너머 외진 골목에서 담배 피우는 그녀를 보았다.

창을 드르륵 연다면 그녀가 위를 볼 테지.

나는 창 열려던 손을 거두었다.

굳이 눈을 마주쳐서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방해하고 싶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그녀가 나를 볼까 봐 몸을 숨겼다는 게 맞다.

그녀가 위의 나를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도 있건만, 어쩌면 나의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다.

 

푸석거리는 퍼머머리를 아무렇게나 묶고, 허름한 줄무늬 티셔츠와 반바지의 아줌마였다.

왼손 아귀에는 흰 종이를 구겨 둥글게 야구공처럼 쥐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를 사연 있어 보이게 했다.

그 외 겉으로 보이는 가방 따위의 소지품은 없었다.

호주머니에는 담배와 라이터가 들어있을까.

겨우 몇 초 일별했을 뿐인데, 꽤 자세히 그녀가 뇌리에 담겼다.

잠시 후 다시 내다보았을 때는 떠나고 없었다.

하기는 담배 한 대의 시간이란 얼마나 짧은가 말이다.

 

'왜 이렇게 이른 아침에'라는 질문을 그 낯선 여자에게 적용하기 시작하면 드라마 하나쯤 거뜬할 것이다.

그러니, 단순하게 생각하자.

모닝담배 피우고 싶은데 식구들에게 들키긴 싫어서 입은 옷에 밖으로 나왔다고.

아직 이른 시간이니 누가 날 볼 거냐고.

아니라면, 일하러 가는 길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아침의 일상을 행한 것뿐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는 그녀의 급한 듯한 흡연이 못내 쓸쓸하였다.

담배가 자신의 선택이라면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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