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5. 금요일
새해 들어서서 닷새째 날이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카톡이 울린다.
안경점, 치과, 전자랜드 등등이다.
그들의 용무는 해마다 한결같다.
"愛야 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2024. 1. 25. 목요일
북극한파라고 전국이 꽁꽁 얼었다.
이 강추위에 나는 느닷없이 머리카락이 거슬린다.
지난 추석 무렵 아주 짧게 자른 후 그대로 방치하였더니 어느새 헬멧머리가 되었다.
패딩 후드에 닿는 무게가 싫어서 얼마 전 목덜미 부분을 셀프로 잘랐더니 동글뭉툭한 머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꽤 버티다가 전체적인 층을 주어야 해서, 오늘은 미용실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굳이 이런 날씨에...!)
우리 동네에는 작은 골목 미용실이 참 많다.
유행 따르는 젊은 여자들이 아닌 동네 아줌마들을 주고객층으로 삼은 듯했다.
미용실에는 먼저 온 할머니 네 분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도 다가오고 하니 몸단장 주간인 모양이다.
한 분은 파마 뼈다귀를 푼 후 머리감기를 기다리는 듯한데, 머리를 뒤로 젖히며 졸고 있었다.
또 한 분은 정수리에 올라온 흰머리 탓에 마치 히말라야 설산을 이고 있는 듯했다.
네 사람의 공통점은 초강력 파마에 새까만 머리색깔이었다.
나는 다섯 번째 차례를 기다리기 위해 작은 스툴에 엉덩이를 붙였다.
한 할머니가 염색을 그만하고 싶지만 그 과정이 보기 흉해 염색을 멈출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였다.
그러자 한 할머니가 갑자기 나를 보며 말했다.
"저 아지매 머리색깔이 차암 이뿌네, 염색한 거 아니지요?"
졸던 할머니까지 깨어 네 할머니가 일제히 나를 본다.
"색이 이뿌네, 나도 저런 색이면 염색 안 할 건데."
"아이구, 무슨 말씀입니꺼, 염색하고 싶어도 못해서 그냥 이리 길어졌습니다, 허허."
"아니라, 너무 자연스럽고 멋스럽구마는."
"절대로 염색하지 마이소, 이뿌니까."
내 머리는 흰색, 회색, 검은색이 일관성 없이 섞여있는 과도기형이다.
특히 앞머리가 더 희어서 나이들어 보임에 한몫한다.
하지만 염색에서 빠져나오느라 수개월 인내심을 투자했기에, 다시 염색의 늪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머리 검은 네 할머니들이 머리 허연 나를 향해 머리색 부러워하는 장면은 개그처럼 우스웠다.
마치, "넌 결혼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라며 응원하는 결혼한 친구를 보는 기분이랄까.
차례가 되어 커트를 하고 나오니 머리가 휑하고 바람이 더 차게 느껴졌다.
머리카락도 純毛인데 그걸 걷어낸 귀가 시리고 두피는 얼마나 썰렁한지.
내 머리색 좋다면서 할머니들은 파마에 염색까지 알뜰히 하고 미용실을 떠났으니, 이기 머선 일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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