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일 찌는 듯이 더웠다.
더위를 유독 타는 나는 집에 숨어있다가 해가 지면 슬금슬금 마트에 가거나 산책을 했다.
잘하면 후천적 드라큘라도 될 수 있겠다.
그러나 낮에 봐야 하는 볼일도 있어서, 이를테면 오늘처럼 은행에 가려면 되도록 이른 아침에 나가곤 했다.
골목길 내 앞에 자그마한 할아버지가 가고 있다.
시장에 가시는 듯 가정용 카트를 돌돌 끌고, 아니 그런데 저것은 양산...?
서울도 아니고 신세대도 아니고, 이른바 '경상도 남자'로 평생 살아오셨을 저 노인이 여성용 양산을 쓰고 있었다.
짙은 네이비 바탕에 자잘한 무늬가 있는데, 꽃무늬인지 도형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폭염이니까 모든 것이 다 수긍되었다.
#2
매일 찌는 듯이 더웠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곁의 아주머니는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자전거를 탄 채 한쪽 다리를 쭉 내려 브레이크 삼아 땅을 디디고 있는 할아버지도 보였다.
헉, 그런데 반바지가 짧아도 너무 짧았다.
단언컨대 내가 본 70대 할아버지의 반바지 중 가장 짧았다.(반바지 더 짧게 입는다고 안 덥나?)
할아버지는 얼마나 무방비로 햇볕을 받아들였는지, 나뭇가지처럼 마른 팔다리는 짙은 초콜릿색이었다.
하하, 폭염이니까 모든 이상한 것이 다 수긍되었다.
#3
8월 막바지 어느 사흘 동안 배출한 음식 쓰레기는 복숭아 씨앗 3알이었다.
그마저도 씨앗이라 종량제 봉투에 넣었다.
음식물 쓰레기통은 사흘 전 비운 후 비닐을 씌워놓은 그대로였다.
집안에 음식물 쓰레기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여 한 줌도 비우는 편이다.
딱 먹을 만큼 덜어 먹으니 조리된 음식물이 쓰레기로 배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비록 1일 2식이지만 거르지 않고 잘 챙겨 먹었다.
그런데 체중은 왜 2킬로나 빠졌을까.
이 경우는 폭염이니까, 하며 수긍하기 억울하다.
얼른 가을이 와야 한다... 올 가을에는 기필코 말(馬)이 되리라.
글과 엄악은 별 관련이 없음. 그냥 글이 심심해 노래라도 올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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