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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쓸데없는 추리

by 愛야 2024. 7. 16.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환기를 위해 한 뼘 열어둔 베란다 바깥창으로 차락차락 빗소리가 들어와 머리맡에 내내 머물렀다.

빗속에 누워 잠을 자는 듯했다.

 

커피를 들고 창에 붙어 서서 바깥을 본다.

비스듬히 아래 이웃 빌라의 옥상에 빨래가 빗속에 있다.

타월이 세 개, 팬티가 2개, 티셔츠 하나, 그리고 초록색 이태리 긴 타월이 비를 맞고 있다.

어제도 비가 종일 오락가락했는데,  그렇다면 대체 저 빨래는 언제 해서 언제 넌 것일까.

오늘이 아님은 분명하다, 내가 목격하는 지금은 새벽 5시니까.

빨래의 주인은 그제나 그끄저께 빨래를 해서 널어두고 어딘가 멀리 떠났을 것이다.

그 사람은 비 예보를 알지 못했거나 알았어도 믿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래야 저 풍경이 말이 된다.

멀리 있는 그 사람은 거둬들이지 못한 자신의 빨래를 걱정하고 있을까.

걱정할 사람이면 애초 비를 맞히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저 옥상에서 속수무책 비를 맞고 있는 빨래를 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비에 바람까지 몰아치는 날이면 빨래줄 한 귀퉁이로 몰려 비에 젖곤 하였다.(그럴 때는 빨래가 가련하다)

딱하고, 화도 났다.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빨래의 주인을 향해 혀를 찬다.

뉴스에서 그토록 알려주었는데 왜 저럴까, 저쯤이면 빨래에 대한 학대 아니냐? 

빨래를 옥상에 넌 것을 보면 뽀송 햇살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텐데, 차라리 실내 건조대에 널지 그러냐.

 

혀를 차다가 그런 내 모습에 피식 웃으며 창에서 돌아서는데, 문득 다른 관점이 머리를 스쳤다.

아.... 말리는 것이 아니라 빨래를 하고 있는 중인가?

그래서 비 올 때마다 빨랫감을 일부러 내다 널어두는 것인가?

그럼 비누칠도?

 

 

 

어느새 7월도 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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