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농담을 좋아하던 동료 남자 선생님이 날 보고 낚시 바늘 같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날카롭고 까다로와 보였을까?
미혼 때라 바싹 마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 성질머리를 간파했기 때문이리라...
며칠 전, 친구를 방문하고 오던 길이었다.
위에서 내려 오는 엘리베이트를 6층에서 탔을 때, 한 아이와 그 아빠가 퀴즈를 하고 있었다.
난 돌아 선 위치 상, 뒤통수로 문답을 듣게 되었다.
6-7세 쯤 되어 보이는 통통한 여자아이였다.
아빠 ; 그럼 눈은?
딸 ; 시각
아빠 ; 귀는?
딸 ; 처엉 각 ㅡㅡ( 아이들 특유의 의기양양, 아빠는 담담하다. 이건 보통이지 하는 듯)
아빠 ; 그걸 다 합쳐서 공.감.각.이라고 한단다.
앗, 이건 아닌데?
이 대목에서 난 고개를 휙 돌려 그 아빠를 보았다.
그는 내가 아이의 똘똘함에 놀라 돌아 보는 줄 알았을까?
딸내미는 자신들의 知的 게임을 뽐내고 싶었는지 이번엔 자신이 물을 테니 아빠가 대답하라 하곤 그 놀이를 반복했다.
그리고 아빠처럼 꼬리를 달았다.
딸 ; 그걸 다아 합치면?
아빠; 공.감.각.
부모는 다 제 아이가 그럴 듯해 보여서 똑똑함을 남에게도 알려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의도가 뻔히 보일 때 우린 좀 민망하다.더구나 어중간한 지식을 설파한다면 심하게 민망하다.
공감각까지 몰라도 되는 미취학 아동인데, 아빠는 꼭 공감각을 가르쳐야 했을까. 그것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 아이가 만약 여러 명이 타고 있는엘리베이트에서 퀴즈하자 했더라면 나는 나중에 하자 했을 텐데 저 아빠는 너므 교육적이다.
하긴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교육하는 방법도 다 나름일 터, 하지만 돌아오는 길 내내 갑갑했다.
난 오늘 또 다른 선무당을 보았던 것이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다 합치면 오감이지 왜 난데없이 공감각이냐고.
공감각은 그렇게 감각을 죽 합친다는게 아니다.
감각의 전이가 전제된다.
ㅡ푸른 파도 위로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 이는 그냥 시각과 촉각이 나열된 것이다.
ㅡ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 윤동주 <자화상> 중 ) : 이게 공감각이다. 바람을 표현하고자 함에 촉각을 시각화한 것이다.
ㅡ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김광균 <외인촌> 중) : 공감각의 교과서같은 유명한 싯구다. 청각적 종소리를 "푸른" "분수처럼"이란 시각으로 이미지를 전이시켰다.
난 이런 것을 공감각이라 알고 있다.
<문학개론>은 각설하고, 지난 번처럼 방송이 아니고 가족 간의 오류라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 와 저녁을 먹으며 아들에게 그 말을 한다.
아들이 하하 웃는다.
"엄마, 그러면 그 아이는 쭈욱 잘못 알고 가겠네. 학교에 가서 배울 때까장?"
아, 이거 웃어도 되나?
왜 내 귀에는 그런 말들이 잘 들리나.
파도소리 들리는 소라껍질 같은 귀도 아니건만, 정말 낚시바늘인지.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꼭 낚아 올리는, 낚아 올리고 싶은 심사.
도를 배워야 하나 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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