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무지 타는 나.
여름 한철 잠깐 죽었다가 깨면 좋겠다.
겨울잠이라는게 있듯이 말이다.
긴 장마가 끝나고 나니 그동안 밀린 몫까지 훅훅 더 덥다.
어젠 왜 그리 시간에 비해 능률이 안 오르던지, 집에 돌아온 시간이 9시 넘어 있었다.
아들은 나를 보자마자
"엄마, 스파게티 해 줘" 한다.
아들은 방학 땐 유난히 스파게티를 자주 청한다.
잠깐 누워 기절한 척해도 안 통한다.
에잇, 벌떡 일어나 후다닥 한 접시 해 준다.
녀석은 내 얼굴만 보면 엄마, 밥 줘!다.
"넌 내가 식당 아줌마로 보이냐"
아들은 웃는다.
그 덕분에 1년새 10센치 넘게 자랐다.
이 집에 이사 와서 처음 맞는 여름이다.
남향이라 집은 시원하다.
앞 뒤 베란다 창문을 마주 열어두면 바람이 지나가느라 책갈피가 펄럭인다...
에어컨은 없다.
앞으로도 살 생각은 없다.
전기세 무서워서 잘 켜지도 못함은 물론이거니와 에어컨의 그 살을 쓰리는 듯한 냉기도 달갑진 않다.
얼마 안 가 두통도 온다.
선풍기도 어지간히 더워야 튼다.
남보다 땀은 더 흘리는 주제에도 말이다.
에어컨 있는 집들도 거의 접대용으로, 아니면 더워 돌아가실 정도의 한낮에만 잠깐 켜는 걸로 안다.
물론 일반 평민들 경우다.
에어컨은 거실 귀퉁이에 일년을 우두커니 서 있다가 잠시 임무를 수행한 후 다시 내년을 기약하며 우두커니다.
그걸 왜 사나.
백화점, 마트 , 지하철, 자동차, 버스, 병원, 하다못해 한 평 반 구멍가게도 다 에어컨인데.
돌아와서 쉬는 내 집만은 자연풍으로 살자 싶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아, 지난 겨울엔 되게 추웠다.
너무 오래된 아파트라 추위는 감수해야 한다.
지친 덕분일까, 지난 밤 나는 그 열대야에도 깊이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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