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50분에 휴대폰 사자울음 알람이 웁니다.
사자가 아침마다 머리맡에서 그르릉 표효하면 끙하고 일어나 욕실로 갑니다.
거울속의 내 얼굴은 밤 사이 젊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깨어 어제밤 감은 머리를 오늘 아침 다시 감고 학교로 갑니다.
인사말과 함께 현관문이 닫히면 문 뒤에 대기하고 있던 고요가 찾아옵니다.
어제와 같습니다.
세탁기를 돌리려고 빨랫감을 분류합니다.
아들넘은 꼭 양말을 홀딱 뒤집어 벗어둡니다.
발바닥에 닿는 부분이 더 깨끗해야 하니 일부러 그렇게 한다네요.
문제는 그걸 듣는 에미가 킬킬 웃고 만다는 겁니다.
바로 벗는 사람 있듯이 뒤집어 벗는 사람도 있겠지요.
나중에 며느리에게 잘못 키웠다고 한소리 들을 게 뻔한 일이지만 그런 것으로 아이와 다투진 않습니다.
숫놈 냄새가 배인 아이방 이불을 개어 줄까 말까 하다가 말까 쪽으로 태도를 정합니다.
폭격 맞은 듯한 책상 위를 한참 봅니다.
정리해 줘도 사흘이면 원위치로 돌아가는 것을 안 후부터 안 해 줍니다.
불편하면 스스로 할 것이고 불편함을 모르면 그대로 지내겠지요.
늘 하던 대로 커피를 큰 머그잔으로 들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제와 똑 같습니다.
어제의 습관으로 오늘을 삽니다.
눈 떠서 잘 때까지 습관적이지 않은 게 있습니까.
하다 못해 지구도 습관대로 돌고 해도 습관대로 뜨고 집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란 가설을 인간들이 줄창 뇌었지만 해가 지 습관을 바꾼 적 있습니까?
한 번쯤 못 이긴 척 서쪽에서 뜰 만도 한데 습관이란 그리 무섭습니다.
습관에서 벗어난 일이 생기면 우린 '사건'이라 부릅니다.
안정적 행동 궤도를 이탈해서 허둥대다가 하루를 마감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 죙일 정신 없어 죽는 줄 알았네.
난 정신 없어 죽어도 좋으니 습관대로 살기가 싫습니다.
아무런 정성 없는, 습관적인 생계, 습관적인 도리, 습관적인 사랑해.
사랑도 반복되면 습관이 되겠지요.
습관적인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아, 습관적인 사랑이라는 말도 성립이 안되는 셈이네요.)
습관엔 설렘이 없습니다.
기대감이 없으니 실망도 없는 그것을 안정적인 사랑이라 착각합니다.
평화일 순 있겠으나 평화롭다고 다 사랑이진 않겠지요.
나도 분명히 빠져보았던 사랑의 본질을 이젠 까맣게 잊어버리고 무덤덤함도 사랑의 한 종류라고 위안합니다.
변화가 두렵고 변해버린 상대의 마음을 눈치채기 무섭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들은 나에겐 한결같은 사랑일지라도 그, 혹은 그녀에게 가 닿는 효력은 이미 없습니다.
변치 않는 사랑이란 변화 없는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닐 겁니다.
열정적인 사랑이냐, 잔잔한 사랑이냐의 문제도 아니랍니다.
한 동료가 이러더군요.
알츠하이머 병을 앓는 남편을 다룬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자신의 남편이 너무나 이뻤다구요.
빨래를 널다 말고 남편에게 가 마구 뽀뽀를 해 줬다네요.
뽀뽀든 딥키스든 남편 혹은 아내와 입을 맞춘 지 얼마나 되었나요.
얼굴을 소중히 감싸안고 이구동성 설왕설래를 한 지 까마득하다면 사랑이 어색해진 지경이 아니고 뭡니까.
이런 행동들은 '낯선' 것이 아닙니다.
'잊고' 있었을 뿐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스스로 무덤 속에 사장시켜 버린 닭살 애정 행각들을 더 늦기 전에 하나씩 꺼내는 겁니다.
한 톨의 사랑의 불씨라도 아직 남아 있다고 여긴다면 체질은 빨리 개선되어야 좋습니다.
습관으로 여생을 보낼 것이라 생각하면 암담합니다.
단, 갑작스런 콧소리와 느끼한 눈빛은 비상사태를 유발시킬 수 있으니, 기후 풍향 온도 요일 자녀성적 등을 감안하여 실천하십시요.
진실한 사랑의 부작용은 학계에 보고된 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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