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20
드디어 교자상과 실크 요. 이불 세트를 버렸다.
둘 다 결혼 햇수만큼의 나이가 된 물건들이다.
폐기물 신고하여 버리려니 자꾸 잊어버리고, 혹 생각나도 성가셔서 미루던 차에 마침 버릴 기회가 생겼다.
어찌나 기쁘던지 혼자 힘쓰며 묶어서 트럭에 실어 주었다.
이렇게 새 이불인데 아깝다며, 3층 할머니는 나를 말리고 싶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장롱만 차지하던 큰 이불에 나는 미련이 없었다.
한 해를 끝낼 즈음이라 더더욱 홀가분하다.
살림살이가 이제 몇 종류 남지 남았다.
2016. 12. 31
오후에 아들 녀석이 내려왔다.
나는 며칠 만에 밥을 하고, 오후 내내 반찬과 국을 만들어야 했다.
예정에 없던 피곤한 송년의 밤이 되었지만, 아이는 다행히 밥을 두 공기 먹었다.
심지어 저녁을 먹은 후 계란을 삶아 먹고 싶다고까지 했다.
평소 아이는 계란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라면에도 넣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정도다.
어릴 때는 계란찜에 밥을 비벼주면 혓바닥으로 밀어내곤 했다.
유일하게 먹는 경우가 삶은 계란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계란 마다하는 녀석이 이 <金>계란시대에 굳이 계란을 삶아 드시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3개쯤이라나 뭐라나.
나는 한술 더 떠 4개를 삶아 주었다.
말이 '특란'이지 워낙 메추리알 못지않아서다.
살다 살다 계란으로 사치를 다 부렸다.
2017. 1. 5
비가 조금씩 내렸다.
날씨 탓인지 몸과 마음이 무겁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오후 1시가 넘어 아침 겸 점심을 겨우 먹었다.
새해부터는 복부관리를 하겠다고 몰래 결심을 하였는데, 아직 실천 전이다.
how to에 대한 체계적 플랜은 당연히 없다.
일정한 시간에 먹고, 일정한 시간에 걷기, 그게 다다.
시계추처럼 살기?
그것 또한 나쁘다고 할 순 없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2017. 1. 8
결국 단팥빵을 샀다.
저녁 6시 T.V. 뉴스를 보다가 분연히 나가 단팥빵 4개와 버터크림빵 2개를 사 왔다.
'결국'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동안 빵을 끊었ㅡ다기보다 멀리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콜레스테롤 검사를 하였는데, 중성지방 수치가 높았다.
의사가 약을 처방해 줄까요? 물었다.
나는 거절했다.
일단 운동과 음식조절을 6개월쯤 해 볼게요.
의사는 웃으며, 강제처방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혈관이 좋고 수치가 많이 높지 않아서예요,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몸이 처리하지 못해 내놓는 것이니, 음식이나 운동만으론 잘 안 될 거예요.
아이가 집을 떠난 후로는 육류를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라면을 싫어하고 채소를 좋아하며, 더구나 과식은 드물었다.
운전을 하지 않으니 항상 대중교통이고, 저녁 운동으로 걷기를 부지런히 했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레스테롤이... 높다니. (마이 억울함)
그날부터 빵과 크림커피와 밀가루를 줄였으며, 커피 비스킷을 끊었다.
대신, 아몬드와 햄프시드를 사고, 친정 냉장고에서 코코아닙스 2봉지를 들고 왔다.
내 평생 건강식품을 내 손으로 사는 일은 처음이었다.
가끔 아침에 빵이 그립기도 했다.
그땐 구운 잡곡식빵 하나를 반 잘라 작게 샌드위치를 해 먹으면 그리움은 쉬 잊었다.
음식을 못 참는 타잎이 아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렇게 잘 참았는데 단팥빵을 사 버렸다.
몸의 낡음과 그 한계를 인정하고 스스로 굴복하고 싶었던 게지.
빵을 참고, 밀가루를 참고, 그래야 할 정도로 아까운 젊음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야.
이제 기꺼이 약의 힘에 기대는 시점이 되었어.
사실은 단팥빵 아닌 페이스트리를 더 좋아하지.
파삭한 가루를 흘리며 베어 무는 겹겹의.
부스러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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