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스러記

부스러記 2

by 愛야 2017. 1. 25.

 

 1.

겨울이니 남쪽도 많이 춥다.

영하 6도, 막 이런다.

이웃집에서는 보일러로 들어가는 수도관이 터져 물이 흘렀다.

그런데, 암만 그래도 눈은 펑펑 안 온다는 것.

걸핏하면 눈 따위가 내리는 웃지방과 정녕 다르다. 

 

2.

  

 

 

 

추워도 집에서 절대 양말을 신지 않았는데 올해는 신었다.

그것도 무려 수면양말.

심지어 잘 때 수면바지도 입었다.

북실대는 몸땡이로 잠들었던 어느 아침, 시체였던 것처럼 아득한 의식으로 눈을 떴다.

죽었다 깬 듯 오랜만의 깊은 잠, 간밤 뒤척임의 자각도 없었다.

발을 따뜻하게 해서 그런가.

그날 이후부터 계속 수면양말을 신고 잔다.

물건의 이름대로 기능을 받아들였다.

 

 3.

내일은 책을 한 권 사러 나가야겠다.

어떤 책이든 펄럭펄럭 잘 읽히는 넘을 간택해야겠다. 

오래 책을 잊고 있었다.

노안이 오고, 활자가 피곤하고, 방금 넘긴 페이지가 無로 변하는, 무기력하고 신경질스러운 싯점에서 책을 놓았었다.

책에서 무언가를 얻는 짓은 이제 그만하라는 신호구나 싶었다.

그것이 가치 있거나 무릎을 치는 내용이라 해도 말이다. 

책을 잊으니 또 그런대로 잊을 만했다.

보고 싶은 신간도 없었고 관심마저 일지 않았다.

작은방 책장 옆을 지나며 책이 뒤죽박죽 꽂힌 꼴을 봐도 심기 불편하지 않았다.

다 산 것일까.

책은 게으른 자의 도피처라 했으니 나는 그럼 갑자기 부지런한 인간이 된 것인가.

하지만 다 알다시피, 활자를 놓았다고 별다른 평안이 오는 것도 아니다.

가령 영화나 여행이나 그림이나 계모임이나 쇼핑이나 그 무엇도 책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세 끼 먹을 것 두 끼 먹는다고 부자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응? 같나?)

그래서 다시 깨달은 사실, 제일 만만하고 저렴한 건 역시 책이라는 이 간사한 유턴.

 

 

 

 

 

 

 

'부스러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친 부스러記 6  (0) 2017.07.23
부스러記 5  (0) 2017.06.22
부스러記 4, 낯선 시간  (0) 2017.05.14
부스러記 3  (0) 2017.04.03
부스러記 1  (0) 2017.01.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