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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러記

부스러記 4, 낯선 시간

by 愛야 2017. 5. 14.

 

 

 

  2017. 5. 1 

믿을 수 없게도, 5월이다.

새해 인사를 나눈 지 엊그제 같은데, 이런 속도면 연말도 곧 코앞이겠다.

나는 시간을 가장 낭비하고 있다.

 

  2017. 5. 2

홈플러스에서 비트를 싸게 팔고 있었다.

5-6개 든 2kg 박스가 4,990원이다.

주먹만 한 것 하나에 5,000원을 넘긴 적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이게 웬 떡이다.

 

비트를 손질한다.

세 개는 신문지에 각각 싸서 냉장고 넣고, 두 개는 씻어 껍질 벗긴다.

워낙 살림 솜씨 출중해 그런지, 비트를 다듬으면 온 싱크대, 칼, 도마, 두 손은 핏빛으로 처절하다.

최소 닭 한 마리쯤 저세상 보내버린 현장이랄까.

하지만 다행스럽게 색소는 물에 잘 씻기고, 그 맛은 아삭하고 달콤하다.

한 김 쪄서 부드러워진 비트를 샐러드에 얹어 먹었다.

핫핑크의 살벌한 저녁 한 끼. 

 

 

  2017. 5. 9

외출에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그릇 몇 개를 씻었다.

내려다보며 그릇을 헹구는데 목이 답답하다.

옷 앞자락을 좀 잡아당긴다.

다시 목이 답답하다.

손을 어깨 뒤로 뻗어 더듬어 보니 등짝이 훌렁 파였다.

옷을 돌려 입어 그랬구나.

싱크대 앞에 선 채로 티셔츠를 바로 입는다.

편하다.

옷을 돌려 입어도 알려줄 사람 없을 때는, 옷이 내 목을 조를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2017. 5. 13

버스는 산복도로로 한참 올라간다.

나는 적당한 아무 정류장에서 내린다.

도시의 발치에 누운 머언 바다와 햇살, 오, 간결한 미풍.

 

 

 2017. 5. 14

2017년 열무김치,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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