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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404

베틀에 앉아 있다. 베를 짜 본 적도 없다. 짜는 것을 본 적도 없다. 그래도 인생은 베짜기다. 씨실 날실을 번갈며 한 뼘, 한 자, 한 폭. 행과 불행을 번갈며 10년, 20년, 50년을 다 짜 간다. 간혹, 아주 간혹 연이은 불행과 행복이 뭉텅뭉텅 박자 못 맞추어 오지만 종당에는 누구라도 얼추 비슷한 무늬의 베를 짠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나를 위로할 말이 없다.... 누렇고 올이 성성한 인생. 2005. 9. 22.
무서운 숙제. 계절이 바뀌는 순간에는 꼭 비가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다시 겨울로 들어서는 들머리에 비가 한차례 지나간다. 비가 갠 아침에 갑자기 하늘이 쑥 높아져 있기도 하고, 몸을 옹송거리게 만드는 찬바람이 찾아들기도 한다. 올해도 가을과 겨울밖에 남지 않았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한.. 2005. 9. 16.
수덕사 가는 길<2> 2. 두 번째 길 학교를 졸업한 후, 친구들과 나는 모두 교사가 되어 각기 다른 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겨울방학이 되었다. S와 J 그리고 나는 서울에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한걸음에 뿅하고 가 버리면 재미없으니, 중간을 에둘러서 가자 했다. 일이 있어 함께 출발하지 못하는 S와는 서울.. 2005. 9. 6.
수덕사 가는 길<1> 휴가철과 방학이 끝나고 나니 곳곳에 여행이야기가 즐비하다. 연수교육이나 개인적 볼일을 위한 이동을 제외하고 오롯이 여행을 위한 여행을 한 것이 언젠지 기억도 흐릿하다. 이렇게 살면 뭐하나 싶지만 막상 자투리 시간이라도 생기면 그저 방바닥과 합체할 뿐이었다. 얼마 전 친정언.. 2005. 9. 3.
9月이 되었습니다. 9月이 되었다. 8월 31일과 다를 바 없는 아침이건만 어쩐지 딴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다. 아직은 창밖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하지만 햇볕은 한결 얇아 보인다. 가을인 것이다. 나는 골똘한 척한다. 시시껄렁한 생각을 한다. 허무맹랑한 생각을 한다. 올바른 생각도 가끔 한다. 한숨은 쉬지 .. 2005. 9. 1.
신경숙 신경숙의 &lt;부석사&gt;를 천천히 아껴가며 읽었다. 속독을 배운 아들은 타박을 이만저만 하는게 아니다. 난 최근, 책은 빨리 읽을수록 빨리 잊혀진다는 나름대로의 개똥논리로, 천천히 읽으려 노력한다. 그녀의 글솜씨는 늘 부럽다. 중언부언한 나머지 갈수록 뜻이 모호해져 버리는 나의 .. 2005. 8. 28.
비 온 후 가을하늘 목 화 서 정 주 누님 눈물겨웁습니다. 이 우물 물같이 고이는 푸름 속에 다수굿이 젖어 있는 붉고 흰 목화꽃은 누님 누님이 피우셨지요? 퉁기면 울릴 듯한 가을의 푸르름엔 바윗돌도 모두 바스라져 내리는데.... 저, 마약과 같은 봄을 지어내어 저,무지한 여름을 지어내어 질갱이 풀 거슴길.. 2005. 8. 21.
진정 좋은 것 그동안 시간없음을 핑계삼아 고전음악을 잘 듣지 못 했었다. 몇 번의 이사 끝에 오디오는 망가져 버렸고, 테잎과 CD는 듬성듬성 있어서 고루 갖추지를 못 했다. 옛날의 LP판은 수십 장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지만, 바늘로 돌리는 오디오가 없으니 무용지물인 셈이다.. 아, 정말 LP판을 돌리던.. 2005. 8. 19.
묵은 친구들 매일매일 너무 덥다. 바다물도 8월 15을 이후로 차가워져, 해수욕 인파가 준다는데 무더위는 조금도 물러날 줄 모른다. 그래도 어제는 참으로 행복했다.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30년 묵은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각자 인생을 굴곡있게 살아 내느라, 멀리 사는 J를 수 .. 2005.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