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406 눈, 눈. 블로그 곳곳, 전국적으로 눈 이야기가 넘쳐난다. 여기 남도는 칼같은 바람만 불고 눈은 지독하게 내려주지 않는다. 내륙지방은 그래도 눈이 조금 내렸지만 바닷가는 그제밤에 비듬같은 것이 눈인 척하며 잠시 흩날리다 그만이다. 쌓이기엔 역부족이라 도로는 깨끗하기 그지없고 먼지도 .. 2005. 12. 19. 이름짓기. 수년 전, 라는 병원의 이름을 보며 허허 참 잘 지은 이름이로고 했었던 적이 있다. 남성 전문 클리닉이기에 더더욱 감탄하였다. 무릇 인간에게 굿모닝이란 또 하루밤을 무사히 넘기고, 새로 얻은 하루를 죽기 살기로 버티어 보자는 뜻이 아니겠는가. 특히 남성의 굿모닝한 신체적 증거를 암시하는 저 병원의 이름이야말로 평범한 단어 속에서 찾아낸 기발함이다. 눈만 뜨면 우리가 만나는 수 많은 것들 중 최고는 단연코 '이름'일 것이다. 상호, 상품명, 프로그램 이름, 블로그명, 심지어 여보 당신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에라도 '이름'이 붙여져 본질을 나타내 준다. 나는 '말'(언어)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우리는 노벨문학상에 목매달지 말아야 한다는 이상한 한글 사랑을 나는 가지고 있다. 까짓 노벨 문학상이 뭐라고 우리 .. 2005. 12. 14. 시인인 내 친구 <껌 씹는 너를 보니> ㅡ OOO 껌 씹는 너를 보니 내가 다 평화롭다. 입을 될 수 있으면 딱딱이 소리를 낼 수 있게 바싹 오무리어 상하로 반복하는 너의 입은 어찌 사람이 밥을 먹고 삶을 위해 살기 위한 입이더냐. 다만 그 입은 평화를 위하여 평화를 씹고 씹어 어느 봄날 눈 녹던 아침 희.. 2005. 12. 10. 나도 혼자 먹는 술 어느 도사님께서 혼자 먹는 술을 전염시켰음에 분명하다. 이웃 블로그 곳곳에서 혼자 취하느라고 잔이 넘친다. 오늘은 나도 혼자 먹는 술이다. 서쪽하늘에 어린 소주색깔 酒氣를 마음 고운 나는 외면 못 한다. 얼마 전 누군가가 김장김치를 한 통 주었다. 받자마자 간사해진 사람 심리가 먹던 헌 김치를 빨리 처치해 버리고 싶어지는 거다. 나는 아들 녀석이 김치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우연인 척 기억한다. 새콤한 헌 김치 송송 계란도 탁, 영화처럼 깨고 양파 울면서 썰어 넣고, 김치전을 두툼하게 부쳤다. 저녁상을 볼려고 밥통을 열었는데 밥이 좀 어중간한 양이다. 아들밥을 일단 수북하게 퍼 버려야지. 둘이 먹기 충분할 수도 있지만 성장기 아들의 밥을 고봉으로 푸니 한 숟갈이 남는다. 아, 어쩔 수 없구나. 이제 밥이 .. 2005. 12. 4. 기다리다. 12월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상점들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머잖아 온 거리엔 캐롤이 울려퍼지고 산타들이 둥근 배를 신나게 흔들 것이다. 교인도 아닌데 크리스마스가 뭐람 하는 정체성의 갈등이 해마다 찾아오지만, 크리스마스는 그냥 축제라고 인식될 뿐이다. 축제.. 2005. 12. 1. 천 이백원짜리 드라이브 어제 토요일이었다. 아들이 학교에 간 후 바로 외출준비를 하여 집을 나섰다. 언양에 볼 일이 있어서다. 고속버스 타기 전 커피를 한 잔 샀다. 언양으로 가는 모든 버스는 통도사를 둘러서 간단다. 좋다. 가을풍경을 즐길 수 있겠다. 나는 버스 앞좌석에 앉아 덮치듯 다가오는 풍경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오늘은 어느 청년이 먼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청년은 차가 출발하자마자 의자를 제끼고 자 버린다. 쯧, 자리가 아깝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통도사에서 내리고 텅 빈 버스는 언양을 향해 또 휙휙 간다. 빨리 가서 좋은 건지 잘 모르겠는 마음이다. 짧은 거리이고 볼 일이 있어 가는 걸음이지만 오랜만의 시골행이라 旅情을 기대했는데 그럴 겨를도 없이 어느 새 언양에 도착한다. 통도사를 경유했음에도 출발한 지 .. 2005. 11. 27. 면역 1. 멍 지난 여름에 사서 돌리던 훌라후프가 눈에 띄였다. 한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청소를 하다 무언가 걸리적거리는 느낌에 보니 벽에 기대어져 있는 후프였다. 그새 계절이 바뀌어 옷이 두꺼워졌으니 덜 아플거란 생각에 기운차게 돌려 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아팠다. 오늘 .. 2005. 11. 19. 불꽃축제. 지금 여기 부산에서는 APEC이 진행중이다. 그들이 모여 회의해서 과연 우리에게 뭐가 도움되고 나아가 아시아 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별 알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나아지는 게 없으니 관심가지는 나만 억울할까봐서 그런다. APEC이 결성된 국제정치적인 배경이라든지, 미국이 끼어든.. 2005. 11. 16. 숨어있는 검버섯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과 생각을 닮아가는 것. 서글픈 생각이 친정을 다녀오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엄마의 방으로 들어서니 누워 있다가 일어나 앉으셨다. 구부정한 등에 얼굴 가득 주름지어 웃으신다. 왔냐, 배고프겠다. 날씨가 쌀쌀한 탓인가, 유난히 .. 2005. 11. 14. 이전 1 ··· 39 40 41 42 43 44 45 4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