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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부스러記 10 2018. 7. 17 아들 생일이다. 올해는 미역국 대신 소고기 뭇국이다. 이런저런 시험을 앞둔 녀석에게 굳이 미역국을 끓여 먹이고 싶지 않았다. 미신 따위 잘 알지도 믿지도 않으면서, 그러나 별수 없이 노인네 흉내를 내고 말았다. 말하자면, 두려운 게지. 아들은, 심지어 고3 때도 안 그러더니 새삼 왜 그러셔, 웃으며 말했다. 나도 안다. 근데 지금은 어쩐지 그러고 싶네? 2018. 8. 5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다시 잠이 깜빡 들었나 보다. 눈을 퍼뜩 떠서는 멍하니 시계를 올려다보다가 으악 소리치며 튕겨 일어났다. 친정에 가기로 한 날인데, 시간이 늦어버린 것이다. 서둘러 냉장고에서 배추김치 작은 통과 열무 물김치 큰 통을 꺼내 싸고, 양치와 눈곱을 뗐다. 밥은커녕 커피 마실 시간도 없었다. 일찍.. 2018. 9. 7.
감자 OR 옥수수 햇옥수수가 나왔다. 5자루 들어있는 한 망에 3천 원 했다. 한 망을 샀다. 뽀얀 옥수수 속살을 만날 때까지 질긴 껍질을 겹겹이 벗겨야 했다. 젠장, 벗기는 재미 별거 아니구먼 그렇게들 환장인겨. 나는 치아에 끼는 게 성가셔 싫어하지만, 아들은 옥수수를 아주 좋아한다. 옥수수뿐 아니라 감자도 좋아해서 벌써 몇 번이나 햇감자를 삶아 먹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간식이 감자 아니면 옥수수다. 며칠 전 아들은 감자를 먹다가 픽 웃으며, 다 구황작물이네, 이랬다. 하지만 밥은 밥대로 먹으니 구황이란 단어가 민망하다. 막 삶은 뜨거운 옥수수 두 자루를 아들에게 준다. 아들은 토끼처럼 옥수수에 앞니를 꽂더니 와닥와닥 뜯는다. 츠릅 물기를 흡입한다. 오, 사카린 맛, 이 맛에 옥수수 먹는기야. 아들은 행복하게 먹는다... 2018. 7. 12.
부스러記 9, 캣파 2018. 6. 10. 공원의 보리수 열매를 훑어가는 아저씨만 있는 건 아니다. 밤 9시 전후에 고양이 밥을 주는 아저씨도 있었다. 처음 그분을 보았을 땐 어, 남은 참치라도 주나? 하며 예사로 여겼다. 그런데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서 몇 번을 보게 되었다. 유심히 보니, 작은 스쿠터로 이동하.. 2018. 6. 26.
Sweet Dreams 주변에서 여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밝고 활달한 성격이 많았다. 그리고 얼라들도 대체로 여름을 좋아하더라고. 바닥에서 물줄기가 뿜어지자 좋아 자지러진다. 신발도 벗었는데, 물 안 젖게 멀찍이 둔 게 아니라 바로 옆에다 팽개쳐서 신발까지 홈빡이다. 그럴거면 왜 신발을 벗었는.. 2018. 6. 4.
그 남자의 콩나물 다음 정류소에 대한 안내가 나오자 옆의 아저씨가 부스스 깬다. 그는 발치에 두었던 큼직한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일어난다. 친절한 내가 다리를 당겨 지나갈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가 내 앞을 빠져나갈 때 검정 비닐봉지에서 비릿한 콩나물 냄새가 났다. 수그린 내 시선에 그의 형광 오렌지색 운동화가 들어왔다. 운동화는 새것처럼 보였다. 늙수그레한 아저씨에게는 참으로 결단력이 필요한 색채가 아닌가. 형광오렌지 운동화에서 위로 시선을 올리던 나는 움찔했다. 역시 오렌지와 노랑과 그외 다수의 동일계통 색상으로 얽힌 무려 체크 바지. 운동화보다 연한 오렌지색과 베이지와 연두 등으로 이루어진 역시 체크 재킷. 오렌지색을 대단히 좋아하는 모양이다. 상.하의 딱 같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다르지도 않은, 통일감 없는 오렌.. 2018. 5. 20.
봄 감기 #1 돌이켜 생각해 보면 봄은 언제나 불안하였다. 난 봄이 싫어, 하고 평생 말하였던 근간은 불안이었다. 깊은 겨울의 평화를 이제 반납해야 한다. 원색의 꽃들이 떼 지어 피고 또 지고, 더 이상 뜨겁디뜨거운 차를 마시지 않는다. 곧 창문도 열어젖힐 테지. 그렇다고 불안은 왜. 기우뚱거리는 돌을 딛고 선 듯하다. 큰 흉터를 겨우내 잘 감추었다가 조금씩 드러내야만 하는 그 경계의 심정. 내 흉터를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는데. 해마다 봄은 그러나 별일 아니라는 듯이 지나갔다. 올해도 그러하기를. #2 약간의 두통. 약간의 관절통. 약간의 소화불량. 오늘 저녁은 굶어야겠다, 붕 떠오르게 몸을 가벼이 하고 싶어. 아무래도 떠오르기에는 무리겠지? #3 양말을 벗었다. 맨발에 닿는 바닥의 감촉이 눅눅하다. 지겨운 .. 2018. 4. 4.
사라진 #1 영화 본 지 제법 되었다. 내가 잘 가는 극장의 상영작품을 알기 위해 홈페이지를 클릭하였다. 그런데 헉, 영화관이 없.어.졌.다!! 이럴 수가! 건물주가 더 계약을 안 하겠다고 해서 지난 1월로 문 닫는다는 공지가 떠 있었다. 힘센 건물주 같으니라구.... 이로써 간단히 12년간의 예술영화극장은 끝장났다. 남포동에서 문화회관 옆으로 이전하여 10년 만에 그마저도 사라졌다. 나는 그 사실도 모르고 봄맞이 영화나 한 프로 할까 뒷북을 쳤던 것이다. 이제 센텀시티 까지 가야 하나. 너무 허전하고 섭섭했다. 단골 관객들이 서운한 마음에 재개 요청을 올리고 있지만, 문제는 쩐 아니겠나. 그렇지만 나도 함 외쳐볼까, 여 돌아오라!! #2 며칠 동안 계속되던 비바람 그치니 기다렸던 꽃들이 막 핀다. 작년과 같은.. 2018. 3. 24.
젊은 날 #1 제법 몰입해서 보았던 드라마가 지난주에 끝났다. 여러 <마더>의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사건은 극적이지만 행동과 대사가 담백하였다. 사람은 제각각이니 엄마의 모습도 제각각임이 당연하다.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엄마는 딱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최선을 다하는 .. 2018. 3. 19.
그래도 홍매 연일 독하게 춥다. 공원 홍매화의 시계도 일단 멈춤인지 예년에 비해 개화가 늦다. 꽃망울 상태로 오래간다. 3주일 전이나 어제나 드라마틱한 진전이 없다. 하긴, 이 빙하기에 꽃망울만도 어딘가. 많이 벌어진 망울이 요 정도. (실제로는 콩알만 함) 꽃이라고 계산이 없겠나. 이불 밖은 위.. 2018.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