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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404

무戰 #1 이러다 블로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또 잊어먹겠어. 커버를 덮지 않은 자판 위에는 먼지가 하얗다. 자꾸 써야 쓸거리가 또 자라나오는 법인데, 손을 놓고 있으니 점점 메말라서 사막이 되어 간다.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많은 이웃이 문을 닫았거나, 반년 혹은 1년 전 어느 날짜에 멈추어져 있기 다반사다. 나란 인간이 새 이웃을 창출하는 능력은 없고, 점점 동심원이 작아질 뿐이다. #2 그건 그렇고, 깍두기를 담그려고 무를 하나 사 왔다. 요즘 무들이 왜 그리 뚱뚱한지, 살 때 이미 아차 싶었다. 하지만 달랑 하나 사는 주제에 이러니저러니 하기도 성가셔 그냥 주는대로 가져왔다. 언젠가도 말했듯이 나는 큰 식도 아닌 큰 과도를 쓴다. 나는 칼이 무섭다. 솔직히 말하면, 이따만한 식도를 휘두를 요리도 하지 않는다.. 2018. 12. 15.
감자 OR 옥수수 햇옥수수가 나왔다. 5자루 들어있는 한 망에 3천 원 했다. 한 망을 샀다. 뽀얀 옥수수 속살을 만날 때까지 질긴 껍질을 겹겹이 벗겨야 했다. 젠장, 벗기는 재미 별거 아니구먼 그렇게들 환장인겨. 나는 치아에 끼는 게 성가셔 싫어하지만, 아들은 옥수수를 아주 좋아한다. 옥수수뿐 아니라 감자도 좋아해서 벌써 몇 번이나 햇감자를 삶아 먹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간식이 감자 아니면 옥수수다. 며칠 전 아들은 감자를 먹다가 픽 웃으며, 다 구황작물이네, 이랬다. 하지만 밥은 밥대로 먹으니 구황이란 단어가 민망하다. 막 삶은 뜨거운 옥수수 두 자루를 아들에게 준다. 아들은 토끼처럼 옥수수에 앞니를 꽂더니 와닥와닥 뜯는다. 츠릅 물기를 흡입한다. 오, 사카린 맛, 이 맛에 옥수수 먹는기야. 아들은 행복하게 먹는다... 2018. 7. 12.
그 남자의 콩나물 다음 정류소에 대한 안내가 나오자 옆의 아저씨가 부스스 깬다. 그는 발치에 두었던 큼직한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일어난다. 친절한 내가 다리를 당겨 지나갈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가 내 앞을 빠져나갈 때 검정 비닐봉지에서 비릿한 콩나물 냄새가 났다. 수그린 내 시선에 그의 형광 오렌지색 운동화가 들어왔다. 운동화는 새것처럼 보였다. 늙수그레한 아저씨에게는 참으로 결단력이 필요한 색채가 아닌가. 형광오렌지 운동화에서 위로 시선을 올리던 나는 움찔했다. 역시 오렌지와 노랑과 그외 다수의 동일계통 색상으로 얽힌 무려 체크 바지. 운동화보다 연한 오렌지색과 베이지와 연두 등으로 이루어진 역시 체크 재킷. 오렌지색을 대단히 좋아하는 모양이다. 상.하의 딱 같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다르지도 않은, 통일감 없는 오렌.. 2018. 5. 20.
위험한 낙엽 #1 따뜻한 지방이라 좋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 가을이 길게 간다. 나는 어느 지방의 푸짐한 눈 소식이 더이상 부럽지 않게 되었다. 미국의 산불 뉴스처럼 눈 소식도 해마다 T.V 안에서만 만나는 것이었다. 체감되지 않는, 즉 남의 것인데 탐내 봐야 뭐하나. 대신 주어진 기후나 즐기면 될 일이다. 겨울은 겨울이되 살벌하지 않은 겨울이 좋은 나이가 되었다는 말이다. 낙엽들이 아직 고운 색깔을 가진 채 수북하게 쌓여 있다. 저 핑키한 잎들은 대부분 벚나무인데, 봄에는 꽃으로 황홀하더니 가을 단풍도 곱다. 별 같던 단풍나무 잎들은 지상으로 낙하, 나무 밑둥을 덮었다. 색상 좀 보소. 공원 청소차가 몽땅 쓸어 담기 전까진 아직 가을ing. 바로 그때, 덩치 큰 고양이 한 마리가 느릿느릿 단풍나무 잎이 쌓인 길섶으.. 2017. 12. 10.
비밀번호 은행 일을 보기 위해 며칠 만에 컴퓨터를 열었다.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하려는데 어쩐지 비번에 자신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비번 틀리단다. 글타면 이것이 네 것이지? 아니다. 글타면 이것이 네 것이냐? 아니랑께로. 그때서야 기호 하나를 빼먹은 사실이 떠올라 무사히 내 계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연이어 daum으로 들어올려니 또 daum 비번이 아니란다. (은행과는 물론 다른 비번) 오늘 이기 뭔 일진이냐. 12년이 넘게 눈 감고도 드나들던 곳인디. 바로 며칠 전에도 댓글을 달았었는데..... 땀 삐질. 비번 바꾸라고 그리 메시지가 떠도 버틴 결과, 가진 비번이 다양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란다. 3번 틀리고 나니 더 복잡한 절차가 생길까봐 자판을 치지 못하겠다. 결국 비번을 다시 .. 2017. 10. 27.
먹는 이야기 #1 먹을 것이 쏟아지는 계절이다. 과일은 물론이거니와 날씨가 싸늘해지니 붕어빵, 군밤까지 등장했다. 오늘 아침 어깨를 웅크리며 지나치던 빵집은 또 어떠했던가. 흘러나온 갓 구운 빵 냄새는 얼마나 따뜻하고 치명적인지. 미처 결심도 하기 전에 이끌리듯 들어가 큰 몽블랑과 치즈 야.. 2017. 10. 15.
네 안의 짐승 #1 내 냉장고에 짐승이 산다. 어느 날 한밤에 낮고 길게 신음하였다. 끄-응 끄-응, 괴로운 듯이. 처음 그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왔었다. 두리번대며 소리의 진원을 찾았으나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나 말고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의 전원은 대부분 꺼져 있었다. 유일하게 켜져 있는 것은 냉장고, 그 녀석뿐이었다. 그렇다면 너냐? 냉장고는 종종 소리를 내어 자신이 생물임을 알리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졸졸 시냇물 소리거나, 툭툭 얼음 터지는 소리가 다였다. 짐승처럼 신음하기는 처음이었다. 낯선 그 소리는 내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무서워서가 아니다. 덜컥 멈추어 서서, 거금의 새 냉장고 사면 안 잡아먹지 할까 봐서다. 고작 7년짜리가 어디서 그따위 신음이야, 나는 걱정스.. 2017. 9. 17.
야무진 꿈 오십견을 오른쪽 왼쪽 교대로 앓았던 수년간, 아령을 잊고 있었다. 나의 오십견은 재작년쯤 끝이 났었다. 그러나 어마어마했던 통증에 대한 기억으로 그 후 어깨, 팔운동은 엄두도 내지 않았다. 그저 겸손한 스트레칭이나, 걸을 때 앞뒤 흔드는 정도가 '생활 속의 최선'이었다. 어제, 아령의 먼지를 닦아 안방으로 가져다 두었다. 앙증맞은 것 같으니라구, 네 망각의 휴식을 간단히 깨뜨려 주마. 호잇호잇, 몇 번 움직여 보며 결의를 다진다. 이 호물거리는 팔근육(?)이 좀 땐땐해질라나. 나의 팔뚝은 그다지 굵지도 살찌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살은 사라져도 가죽은 남는 법. (호랭이가?) 나이 들어서는 살과 가죽이 따로 놀고, 도무지 근육이 생기지 않는다. 근육 생길 때까지 열심히 운동하다가는 잘하면 .. 2017. 5. 19.
도시의 섬 절벽 위에 마을이 길게 서 있다. 멀리서 보니 깨끗해 보이지만, 낡고 고달픈 동네다. 영도 흰여울문화마을. 무슨 문화인지, 왜 문화인지, 가보고 더 의아했다. 떠날 형편이 못 되어서 그대로 살아왔을 뿐이다. 가난, 그게 문화로 불릴 일이던가. 내세울 것이라고는 눈길만 돌리면 보이는 바다가 전부다. 그것뿐이다. 그것뿐이었는데, 1,000만 관객의 영화 배경으로 이 마을이 등장해 버렸다. 4년 전이었다. 그때부터 낯선 사람들의 발소리가 골목길을 누비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몇 편의 영화에 등장했었는데, 가장 조명을 받은 것이 '변호인'이었다. 영화 한 편으로 '문화'마을이라 이름 붙인 일은 아프고 송구하다. 가까운 '감천문화마을'의 인기의 영향이지 싶다. 저 절박한 대사를 하였던 여배우는 지병으로 얼마 전 세.. 2017. 4. 15.